<시론>한·일 경제통합

이신우 논설위원

중국 전국시대, 진(秦)을 중심으로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의 6국은 서로 생존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진나라는 장의(張儀)라는 책사를 초빙해 각 제후들을 상대로 강국인 진과 2국동맹을 맺어 살길을 찾으라고 설득했다. 소위 연횡책(連衡策)이다. 이에 반해 장의의 라이벌인 소진(蘇秦)은 6국에 진나라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돼야 한다며 모두 힘을 합쳐 진나라와 대결할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합종책(合從策)이라고 한다.

이같은 정국 구도 속에서 특히 진·초·제의 3국은 서로 물고 물리는 구조였다. 셋 중 둘만 뭉치면 나머지 한 나라는 자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삼각관계였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초나라는 장의의 설득에 넘어가 제를 배신하고 진과의 동맹을 택하지만 결국 교활한 진나라에 속아 멸망하고 만다. 혼자 남은 제나라 역시 힘에 밀려 진나라 군대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동북아시아 3국 가운데 중국의 부상(浮上)이 눈부실 정도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만 해도 중국 경제 규모는 일본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올 2분기 들어 실질국내총생산(GDP)이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으며, 올해 전체로도 세계 2위 경제권인 일본을 따돌릴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벌써부터 중국을 미국과 경쟁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대접하는 실정이다.

중국경제가 급속히 비대해지면서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 역시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미국·유럽연합(EU)·일본시장이 수출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2005년 이후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제1 수출시장으로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경제의 국제경쟁력이 한국을 추월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경제의 독자 생존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자칫하다가는 중국경제권으로의 예속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경제가 종속되고나면 여태껏 목청 높여 분노를 표시하던 ‘동북공정’ 쯤이야 아예 우려의 대상에도 끼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한국민은 생각이나 하는 것일까.

만에 하나 이런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한국과 일본은 진나라를 상대로 살길을 찾아야 했던 초나라나 제나라의 입장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중국을 앞에 둔 한국과 일본의 미래 생존전략일 것이다. 중국과 연횡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국과 일본이 합종을 통해 중국을 상대로 생존권을 구축해야 하는가.

먼저 중국을 핵으로 한·중이나 일·중의 양자 관계로 재편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한일관계 3.0:극일을 넘어 공진화(共進化)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그렇게 될 경우 중국과 미국 간 패권경쟁이 심화하고, 한국은 친미노선과 친중노선 사이에서 딜레마에 봉착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고서는 ‘공진화’, 즉 한·일 경제협력 내지 시장통합을 카드로 제시한다. 양국은 “내수시장 상호개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한편, 앞으로의 원 아시아(One Asia)시장 창출을 위한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내수시장 통합은 2억명에 근접하는 대단히 균질적인 소비자 사회를 출현케 할 뿐 아니라 일본의 고도 산업기술과 한국사회의 에너지(활력)를 결합시킴으로써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제주체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이제 한·일 양국은 머리를 맞대고 과거 아닌 미래를 논의할 때가 됐다. 일본 메이지(明治)유신은 불구대천 원수지간인 사쓰마와 조슈번(藩)이 서로 원한을 잊고 손을 잡음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초나라와 제나라의 어리석음 또한 한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