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한글자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황성규 논설위원

한글이 과학적 문자임이 정보기술(IT) 시대를 맞아 더욱 더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철자가 모두 24자로 일본어(50자)나 영어(26자)보다 적어서 휴대전화의 12버튼만으로도 무슨 글자든 구현할 수 있다. 또 철자 수가 적으니 다른 문자와 비교해 입력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입력 방식도 다양하다. 휴대전화와 내비게이션 등 모바일 기기의 한글 입력 방식과 관련한 특허만도 400여 가지가 등록돼 있을 정도다. 그 중 시장 점유율 1위는 55%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의 ‘천지인’. 그 뒤를 LG ‘나랏글’(20%)과 팬택계열 ‘스카이한글’(14%), 기타 모토로라·노키아 등의 방식(11%)이 잇고 있다.

그런데 각 사별로 다양한 이 입력 방식이 자판 표준화를 가로막고 있다.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하지만 과거는 미래를 위해 희망을 남겨 놓고 있다. 국내 한글자판의 입력 방식이 국가 표준으로 통일된 선례다. 사무용 통신기기의 경우 1969년에 4벌식 타자로 통일되고, 텔렉스용은 2벌식으로 일원화된 것.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과학기술처가 설치된 지 2년 뒤의 일이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늘면서 1982년에는 정보처리(컴퓨터) 자판이 2벌식으로 통일됐다. 내쳐 남북한 통일 자판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남북한의 컴퓨터 자판 배열이 다르다. ‘컴퓨터’란 글자를 북한의 키보드로 입력하면 ‘캄츄타’로 구현되는 식이다. 남북한 간 어문법 차이만큼 컴퓨터 자판도 다르다.

최근 중국이 ‘조선어 국가표준 워킹그룹’을 구성, 휴대전화의 한글 입력 방식을 정하려 한다고 하여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회 등 민간 차원의 움직임일 뿐 중국 정부 차원은 아니다. 그리고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에서는 한글의 종주국도 아닌 제3국이 국제 표준화를 신청해 등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은 ‘한글공정’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IT강국, 한글 종주국의 과제는 한글자판을 표준화하는 일이다. 국내 표준에 이어 국제 표준을 만들어 제3국에도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한글 종주국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 일을 조속히 성사시켜야 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기술표준원의 책무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