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맡는 ‘五感 전시’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한국관 출품작가 양혜규씨는 블라인드, 전구 소재의 작품을 내면서 향분사기를 통해 마늘, 커피 향같은 묘한 냄새로도 관람객을 자극했다. 지난 가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양씨의 ‘셋을 위한 목소리’전에서도 선풍기 바람, 히터의 열 외에 공간 가득 잔디향, 코끼리 배설물 같은 냄새까지 전시했다.

미술공간에서 선과 면, 색의 그림과 조각뿐 아니라 빛, 소리와 냄새까지 보여준다. 현대미술도 시각 중심에서 벗어나 시청각 및 후각으로도 보고 느끼는 시대다. 눈으로 보이는 무엇 외에 오감을 자극하는 신감각의 예술이 전시장에서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경우, 블랙박스 전시장의 두 기획전을 통해 관람객에게 ‘소리를 보는 경험’과 ‘냄새의 형상화’를 일깨운다. 2011년 2월13일까지 열리는 ‘미래의 기억들’ 전시장에선 은은한 재스민 향이 관객을 맞는다. 기획자 우혜수 연구원은 “관객들이 현대미술에 다가서기가 쉽도록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를 맡는 등 오감으로 적극 체험하고 참여하는 전시를 꾸몄다”고 밝혔다.

길고 높은 가벽 형태로 피부의 땀구멍을 확대한 듯한 이미지를 담아낸 한국작가 잭슨 홍씨의 작품 ‘땀냄새’는 향분사기를 통해 다소 생뚱맞게 재스민 향을 뿜어낸다. 또 다른 출품작가 신미경씨는 비누 소재 작품을 전시장 외에 화장실에도 선보이며 관람객들이 ‘비누작품’으로 손을 씻으며 만지고 느끼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전시공간 바로 위의 특별전시장에서 전시 중인 ‘크리스찬 마클레이: 소리를 보는 경험’전(2011년 2월13일까지)은 아예 극장이나 암실처럼 꾸며졌다. 전시장 가득 영상과 소리만 흐른다.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스가 미래형 예술의 전시공간으로 디자인한 블랙박스의 특성에 맞춘 본격 기획이다. 할리우드 영화 등의 이미지를 연결해 재구성한 영상작품들이 관람객을 ‘귀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공감각적 예술세계로 인도한다.

전시작은 영화장면 중 합창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굉음 및 비명같은 소리가 드러나는 장면을 4개의 스크린에 14분 동안 담아낸 ‘비디오사중주’, 영화 속 시계장면으로 하루 24시간을 재현한 ‘시계’ 및 전화 통화 장면을 연결시킨 ‘전화’등 세 작품이다.

현실의 24시간 그대로 24시간 내내 상영되는 ‘시계’ 작품은 평소 미술관 개장시간(오전 10시30분~오후 6시)에만 관람이 가능하지만, 미술관측은 연말연시 특별이벤트로 오는 31일 오전 7시부터 2011년 1월1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 상영한다.

이밖에 지난 18일 개막한 아르코미술관의 ‘정마리의 정가, 이수경의 헌신’전은 아예 기획단계부터 소리와 미술의 만남을 시도한 기획이다. 미술작가 이수경씨는 지난 1년간 국악인 정마리씨의 노래를 들으며 일기쓰듯 종이에 드로잉했고, 그 결과물과 더불어 정씨의 정가(正歌)를 발표하는 공동의 무대를 마련했다. 전시장에는 160여 개의 드로잉 작업이 둥근 벽을 따라 전시돼 있고, 4개의 스피커에선 줄곧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술관 1층 무대에선 매주 금·토요일에 정마리씨의 정가 공연이 열린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조용한 행성의 바깥’전(2011년 5월까지)을 통해 소장품 중 미디어아트를 집중 소개한다. 제2원형 전시실에 가벽을 세우고 검게 칠한 미디어아트용의 전시공간에는 김기철 김승영 김영진 김홍석 박현기 육태진 이불 조덕현씨 등 작가 8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한편 지난 20일 SK빌딩 본사 4층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아트센터 나비의 10주년 기념전 ‘이것이 미디어아트다’전(2011년 2월19일까지)에서도 다양한 체험의 장이 펼쳐진다. 비디오방이나 컴퓨터방처럼 꾸민 전시장에서 모바일아트를 비롯해 기술과 예술이 만난 각종 미디어아트를 공개한다. 오감형 전시장들은 관람객이 일정시간 수월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에 간이의자를 비롯해 카펫 방석 등 감상용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