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의원을 살리자>의원 年 2000곳 폐업…‘의료 생태계’ 무너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내과 의원의 내부 모습. 환자들이 동네 의원을 거의 찾지 않아서인지 접수 창구가 썰렁하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전체 의료기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동네 의원이 고사 위기에 몰려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경증환자-의원, 중증환자-대형병원’이라는 의료전달체계가 허물어지면서 의료 생태계(Medical eco system)의 골간을 이루는 1차 의료기관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의료체계 왜곡은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 상승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화일보는 모두 4회에 걸쳐 동네 의원 붕괴 현상과 원인, 해법, 건강보험 급여비 지불 방식의 개혁 등을 주제로 건전한 의료생태계의 복원을 모색해 본다.

서울 노원구에서 소아과 의원을 운영하는 김모(57) 원장은 요즘 고민이 깊다. 하루 30명 정도의 환자를 진찰하면 월 1000만원 남짓 수입이 생기지만 임대료와 관리비, 약값 등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3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나마도 아이들 교육비 등에 쓰다 보면 회비 걱정 때문에 동료 의사 모임에도 잘 나가지 못한다. 급기야 최근에는 한 명 있던 간호사마저 내보내고 ‘1인2역’을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이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느니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해 볼까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동네 의원 고사 실태=대한의사협회 건물에는 올 상반기 ‘건강보험뿐 아니라 의료공급도 지속가능해야 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는 동네 의원 경영 악화에 따른 의사들의 위기감을 잘 보여 준다. 실제로 산부인과 의원의 경우 지난 7∼8년 사이에 전체의 25%가 간판을 내렸다. 전국 시·군·구 지역의 4분의 1은 분만실을 갖춘 의료기관이 없을 정도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개업한 젊은 개원의들은 경영난으로 이자를 갚는 데 허덕인다. 최근 5년 동안 의원급 의료기관의 대출금액이 5조원에 달할 정도다. 송우철 의사협회 총무이사는 “늘어나는 부채와 이자 부담에 시달리다 가정 불화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의사도 1년에 10명 정도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동네 의원의 생존 위기는 각종 통계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의사협회의 ‘의원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2009년 평균 진료시간은 전년에 비해 1시간 늘어난 반면 환자수는 하루 평균 3명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총매출은 8000만원 줄었고, 총비용은 5000만원 늘어났다.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년에서 2009년까지 전체 의료기관의 진료비(건강보험공단 부담금+환자 본인 부담금)는 3배 증가했지만 의원급은 1.9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의료기관 진료비 중 의원급 점유율도 2000년 35.7%(4조6851억원)에서 2009년 22.8%(8조9900억원)로 10년 동안 12.9%포인트나 급감했다. 지난해 의원급 의료기관 2만7000여개 중 1487개소가 문을 닫았고, 2006년부터 매년 1800∼1900개소가 폐업했다. 의원들은 자구책으로 주말에 늦게까지 진료를 하고 평일에도 오후 8∼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1차 의료 붕괴 원인은=1977년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된 뒤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되기까지는 과도기였다. 이 시기 의료보험 확대에 따라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은 ‘5.5.50(5시간 대기, 5분 진찰, 약 타는 데 50분)’이라는 유행어가 잘 보여 준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우여곡절을 거쳐 1989년 단계적 진료안이 확정됐다. 전국을 8개 대진료권, 142개 중진료권으로 나눠 일반 질병의 1단계 진료는 중진료권 안의 의원, 보건소, 병원 등을 이용하도록 했다. 대진료권에서 이뤄지는 2단계 진료는 1단계에서 발급받은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제도가 1998년까지 시행되면서 병·의원의 경영이 개선되고 대형병원의 환자 대기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1998년 10월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모든 병·의원을 1단계 진료기관으로 하고 40여개 상급종합병원만 2단계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대형병원을 제외한 2만여개의 병·의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출혈 경쟁을 시작했다. 이후 대형병원은 시설, 장비, 인력의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양질의 의료 서비스 체제를 갖추지 못한 동네 의원은 쇠락을 거듭했다.

◆서민 의료비 부담만 커져=지난 10년 동안의 의료전달체계 붕괴는 혹독한 결과를 가져왔다. 전달체계의 왜곡으로 동네 의원이 경영난에 처한 것은 물론 대형병원 선호 현상에 따른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감기 등 가벼운 증상도 진찰료가 더 비싼 병원급 이상 외래로 몰리면서 외래 급여비 가운데 병원급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22.0%에서 2009년 30.9%로 급증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의료비가 더 많이 빠져나간 셈이다. 병원들의 경쟁 심화에 따른 과잉·중복 진료, 검사 결과 활용 미비 등 낭비적 요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종 검사료는 2004년 1조원에서 2009년 2조원으로 늘어났다. 이원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장은 “동네 의원들이 의료수가 4만원을 받으려고 1억원짜리 내시경을 도입하는 출혈 경쟁 체제에서 의료체계 붕괴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이 조속히 도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