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보편·선별 복지는 공존하는 것… 양자택일 문제 아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계동 청사 집무실에서 복지정책과 관련한 구상을 밝히고 있다. 김연수기자

건복지부의 1년 예산은 33조원가량 된다. 전체 국가 예산의 11%쯤인데 국방예산보다도 많다. 예산 규모로만 보면 교육과학기술부, 국방부와 함께 3대 메이저에 속한다. 하지만 진수희 장관은 취임 전까지만 해도 이 분야에 대한 인연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사실 (전문성이) 별로 없죠 뭐. 당 정책위 쪽에 있을 때 좀 다루긴 했지만….” 진 장관의 전공은 노동산업사회학이고 학위논문은 여성노동을 주제로 썼다. 17대에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하면서도 전반기엔 교육위에, 후반기엔 정무위에 속해 있었다. 언뜻 들어도 보건복지 분야의 전문성은 없어 보인다.

진 장관은 지난해 8월 말 취임 전후 전문가가 아니라고 코너에 몰린 적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국회 청문회 석상에서 다른 의원들이 지적도 했고, 보건의료 매체와 전문가라는 분들이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얘기는 거의 안 듣습니다.”

취임 반 년이 채 안 된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의 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진 장관은 업무에 제법 익숙해진 듯 보였다. “우리 부에 계신 분들이 잘하는 거죠. 부가 저를 빠른 시간 내에 학습할 수 있도록 ‘티칭’해줬습니다.”

진 장관에게 가장 듣고 싶은 얘기는 아무래도 최근 거센 사회적 담론으로 제기됐던 ‘무상복지’ 논쟁 혹은 ‘복지 포퓰리즘’ 논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진 장관에게 ‘파워 인터뷰’ 요청은 이미 한 달 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장관 측에서 차일피일 미뤄 이번에야 성사가 됐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막 시작됐는데 정부가 막바로 대응하는 게 이상하게 비화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진 장관의 변명이 이해가 됐다. 거세게 휘몰아친 정치권 논쟁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논쟁의 초창기에 장관이 한마디 하면 정부 내에 마치 확고한 컨센서스가 이뤄진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입장이 섰을까. “애초 무상복지라는 건 실현될 수도 없고 원천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민주당이 무상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완전히 무상이란 뜻은 아니거든요. 세금이든 뭐든 누가 됐든지 부담해야 하는 거죠. 무상복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프리 런치는 없다’는 건 이미 판정이 끝난 상태다. 오죽하면 무상 시리즈를 내놓은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여러 정책통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원 대안 없는 무상복지론은 무의미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을까. 이에 따라 야권에서 대체시킨 개념이 ‘보편적복지’론이다.

―보편적복지라는 용어는 무상복지와는 좀 달라 보입니다.

“네…적어도 보편적복지라고 하면 비용 부담의 측면이 있다는 말이니까 (무상복지) 보다 정직한 용어입니다.”

―보편적복지와 선별적복지 사이에서 복지부의 입장은 어떤가요.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둘 중의 하나에 서라고 하는 것은 이분법적 논쟁이고 소모적인 것입니다. 양자택일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 무상복지론을 접고 보편적복지를 내세우면서 복지부 입장이 부드러워졌군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어느 국가나 궁극적으로는 보편적복지를 목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필요한 계층부터 차곡차곡 채워서 보편적복지로 나가는 것이죠. 공간적으로 보면,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맞춤형으로 필요한 곳이 있고 또 어떤 분야는 완전히 보편적복지를 시행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 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만큼은 확실한 판단이 선 것처럼 보였다. “특히 보육 분야는 보편적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진 장관은 저출산 문제를 진정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보육 관련 부분은 보편이냐 선별이냐 하는 복지 논란의 프레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보육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성장동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이어졌다. 보편복지와 선택복지는 공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폴 새뮤얼슨이 말했다. ‘경제에 있어 공짜점심 같은 건 없다(There is no such free lunch in economy)’. 내가 먹은 공짜점심은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공짜로 마신 맥주값은 실은 더 비싸게 받은 점심값에 포함돼 있는 거니까.

―‘프리 런치’에 대한 논쟁은 끝났다고 봅니다. 하지만 보편적복지에 대해서는 이분법적으로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게 장관의 견해인 거고요. 특히 보육 등의 일부 분야는 완전히 보편적복지의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육 분야는 정말로 복지 프레임보다는 국가 성장동력이란 관점에서, ‘우리가 확보하기 위한 투자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죠.”

―저출산 문제는 문화일보가 심혈을 기울여온 아이템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문화일보와 저희 보건복지부가 함께 해온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국민캠페인 ‘아이사랑―More Babies’는 정말 훌륭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출산 장려운동을 벌이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임 전재희 장관 시절에 천착해서 정말 열심히 해왔죠. 그 결실이 최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 9개월간 연속해서 출생아수가 증가했잖아요.”

―맞습니다. 전재희 전 장관은 심지어 재임 시절 ‘정부가 적자재정을 감수하더라도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저출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에 동의하십니까.

“네. 그럴 정도로 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 꼭 풀어야 할 문제라는 각오를 내비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출산 문제는 기존의 문법과 복지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사실 복지 분야는 국민이 문제를 인지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데, 언론이 하나의 이슈를 일관성 있게 다뤄주는 게 참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진 장관은 보육만큼은 포퓰리즘 논쟁 자체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신념을 재차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는 고령화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비(非)노인인구와 노인인구의 비율, 즉 ‘적정부양률’의 문제가 또 다른 과제로 제기된다. 진 장관도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노인인구와 비노인인구의 분포가 중요하죠. 지난 2005년의 부양률이 8대 1쯤인데…비노인 8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한다는 얘기죠. 2020년엔 4 대 1 정도로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부양률을 얼마로 보십니까.

“글쎄요… 4 대 1을 넘으면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포퓰레이션 보너스’라고 부르더군요. 지금의 고령화 속도가 그대로 간다면 10년 뒤엔 정말 힘들고요, 앞으로 5년 동안 출산율을 늘릴 마지막 기회로 본다는 거죠.”

―저출산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어떤가요.

“대통령은 굉장히 깨어 있는 편입니다. 지난해 11월인가,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이 3대 서민예산을 다루면서 소득 하위 70%까지 보육료 전액을 지원한다는 것을 결정했거든요.”

―정부만 열심히 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기업을 협박하기도 하고 읍소도 합니다.”

―어떻게 협박하고 읍소합니까.

“아기 낳는 것을 도와주지 않으면 비즈니스 못할 거라고 협박하죠. 여성 근로자든 남성 근로자든 출산친화적이고 양육친화적인 근무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읍소하고요. 그런데 기업을 너무 법으로 강제하면 아예 여성 근로자를 뽑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 느끼게 하고 유인책을 주는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다출산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를 감면해주자, 이렇게 제안하는 건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복지문제와 관련한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낸 신필균씨가 쓴 ‘복지국가 스웨덴’(후마니타스 간). 국가를 ‘국민의 집’으로 명명하고 복지를 달팽이가 가는 긴 여정으로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보편적복지 정책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복지 시스템을 과감하게 정비한 내용에 대한 기술도 우리 정부가 한번쯤은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네,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같은 스웨덴이라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국가나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금을 내면 투명한 과정에 의해 쓰일 것이라는 신뢰가 없는 거죠. 그저 우리 가족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별 가정은 잘 갖춰놓고 살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구는 반대예요. 집안에는 다 안 갖춰도 지역사회 공동체에는 모든 게 다 있죠.”

진 장관은 ‘공동체적 자본’이 튼튼하게 자리잡은 서구 선진국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한 나라가 복지정책을 펴는 데는 이 ‘차이’를 고려한 특색 있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흔히들 복지수준을 평가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잣대가 ‘OECD 평균’ 어쩌구 하는 겁니다. 전 이것이 못마땅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잘못돼 넘어가는 나라도 있어요.” 진 장관은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함께 보면서 우리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맞춤형 복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얼마전 대통령도 그런 얘기를 했죠.

“그렇습니다. 맞춤형 복지, 한국형 복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할 때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서 일로 매진했는데, 지금은 숨을 돌리고 걸러서 받아들이면서 우리만의 모델링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한국적 맞춤형 복지 모델을 만들고 계십니까.

“연초에 보건사회연구원과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어요. 공식적인 것이라기보단 우리 내부 나름의 준비입니다. 환경에서도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지만 복지에서도 지속가능성이 매우 중요하죠.”

―복지부의 현안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톱 프라이어리티’는 뭡니까.

“크게 보면 복지분야와 의료분야로 나뉩니다. 복지분야의 제도적 틀은 거의 다 정비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보험제도도 돼 있고요. 빈곤층 기초생활보장제도 그렇습니다. 복지급여를 어떻게 늘리냐는 게 숙제이긴 하죠.”

―다 돼 있다고 하시지만 복지전달체계 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정수급자 문제라든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복지전달체계를 사회복지통합망, ‘행복e음’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중복수급이나 부정수급이 많이 걸러지는 시스템이 구축됐고요, 이제 이를 공고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13개 정부부처에서 292개 복지 사업이 있습니다. 국무총리실에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중복사업을 걸러내고 차상위 혹은 비수급 빈곤층에게 분산돼 골고루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진 장관은 특히 복지사업과 예산은 늘었는데 이를 운반할 지자체 공무원이 너무 적다는 점,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동네주민센터나 자치센터에 가보면 한 사람이 300∼400가구씩 책임지다 보니까 과부하가 걸립니다. 복지담당 공무원이 화장실에 갈 새도 없어요. 그래서 올해엔 지방직 공무원으로 선발하는 이들 중에 절반 가까이를 복지담당으로 뽑기로 했습니다.”

―정부가 빈곤층을 열심히 돕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수급자의 탈(脫)수급 의지나 근로 의욕을 꺾는 경우도 있거든요. 부정수급도 문제지만 탈수급하지 않고 나랏돈이나 받아 생활하려는 것도 심각한 모럴 해저드에 속한다고 봅니다.

“인정합니다. 그것 때문에 수급자들이 안 나오려고 합니다. 현재의 복지제도 설계가 탈수급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 달에 80만∼90만원 받는 식당 종업원이 수급자에서 제외될까봐 더 일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적극적인 탈수급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수급자에서 탈락할 경우 각종 급여가 한꺼번에 없어지니까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수급자들이 일자리를 갖게 될 경우 생계급여는 줄여도 교육급여나 의료급여는 2년 정도 지급하는 경과기간을 두도록 했습니다. 또 수급자가 매월 일정액을 저축하면 정부가 같은 액수만큼 지원하는 매칭펀드제(희망키움통장)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복지부가 담당하는 또 하나의 큰 영역은 보건의료다. 사실 이해관계자들의 계산법이 복잡하게 얽힌 보건의료 분야만큼 골치 아픈 분야도 없다. 진 장관은 “정말로 챌린징한(도전적인) 일이 많다”고 숨을 몰아쉬었다. 진 장관은 특히 ‘의료기관 역할 기능 재정립’ 문제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최근 ‘대형병원의 외래환자 약값 본인 부담 2배 인상’ 같은 설익은 방침이 언론에 공개됐다가 여론의 집중타를 맞았던 사실도 거론했다.

진 장관은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동네병원 활성화 방안이나 의료기관 간의 기능 재정립과 관련한 대책들이 이달 안으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건 이해관계자들 간의 합의와 결심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게 가장 어려운 문제다.

진 장관은 그래도 보건의료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사회지도층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이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의 최고 브레인들 아닙니까. 대타협을 통해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상생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타협하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 장관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 학자 출신이다. 학문의 특성상 한때 진보적 영역을 넘나들었다는 그는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을 연구한 백 그라운드가 있어서 그런지 경우에 따라 레프트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 장관은 “점점 나이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에이징 프로세스(Aging Process)’는 종종 이념적 지도를 새로 그리게 하는 법이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