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성의 節介(절개)

윤창중 논설실장

인간의 가치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지성(知性)의 상징, 대학교 총장의 절개(節介)에 관한 문제를 던지고 싶다. 격(格)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싶은 민의(民意)의 뜨거운 심장을 향해. 대학교 총장들이 정치판에 들어가 엉망이 되는 작금의 상황. 김준엽(金俊燁) 선생, 올해 91세 - 일제에 조국을 빼앗긴 식민지 청년 김준엽은 1944년 1월 일본 게이오대에 재학하다가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간다. 아! 그는 중국으로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청년 장준하와 함께 무려 6000㎞를 발로 걸어서 김구 선생께서 임시정부를 세워 항일운동을 하던 충칭(重慶)에 도착한다. 독립군 김준엽, 그는 해방이 되자 고민한다. 난 어떡해. 학자의 길이냐 정치가의 길이냐. 그는 고려대에서 중국학을 여는 정치사학자의 길을 걷는다. 전두환 정권은 그를 대학총장에서 몰아낸다. 낭인의 길. 그러나 1987년, 그는 대한민국 지성의 상징으로, 여야 정치권 모두의 영입 대상으로 부상한다. 민주화였다. 독립군 출신에 한 길만 걷다가 군부정권에 탄압받은 김준엽. 대통령에 노태우가 김영삼 김대중을 제치고 당선. 노태우가 김준엽과 궁정동 안가에서 대좌한다. 1988년 1월6일, 국무총리직 제안이었다.

김준엽이 천하권력을 얻은 노태우에게 말한다. 그는 일기장에 그날 자신의 대화를 빼곡하게 기록. 요약한다. (김준엽 회고록, 장정·長征 4) 첫째, 난 그동안 노태우 당신을 두번 만난 일은 있지만 잘 모른다. 덮어놓고 중책을 맡겠다는 풍토는 고쳐져야 한다. 둘째, 난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되는 전두환에게 총리로서 내 머리가 100개 있어도 고개를 숙일 수 없다. 이건 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내가 전씨 앞에서 굽실거리는 모양을 TV를 통해 보는 국민들, 특히 젊은 층들은 실망할 것이다. 셋째, 난 지난 대선 때 야당 후보자를 찍었다. 도저히 당신에게 굽힐 수 없다. 넷째, 난 교육자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다. 제자가 감옥에 있는데,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 정부의 총리가 되느냐. 김준엽의 다섯째 총리 고사론이다. 권세라면 숨도 안쉬고 들어가는 ‘폴리 대학총장’들, 제발 들어야 한다!

길지만 인용하겠다.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하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 족보에 남기 위해 덮어놓고 벼슬자리에 앉는 그런 풍조는 시정해야 한다. 좀 건방진 말이긴 하나,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않다는 증명을 보여줘야겠다.” 김준엽은 노태우한테만 벼슬을 권유받은 게 아니었다. 평생이었다. 해방되자 광복군 출신 이범석 장군의 영입 제의→4·19 혁명 후 장면 내각의 주일대사 제의→5·16 후 김종필의 공화당 사무총장 제의→1974년 대통령 박정희의 통일원 장관 제의→김영삼·김대중도 김준엽에게 총리직을 제의했었다. 모두 물리쳤다. 이게 지성의 지조(志操)다! 나라 같은 나라, 선진국에서 대학총장 출신이 정부 관직 따라다니는 나라는 단 하나-대한민국뿐! 뭐?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다해도 고려대총장하던 어윤대, 어떻게 KB금융회장에 가나? 연세대 총장하던 김우식,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가나? 비서로! 중앙대 총장하던 박범훈, 어떻게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서울대 총장 정운찬? 기 막힌다.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돼보겠다고 그 야단치다가, MB 정권에서 국무총리하더니 동반성장위원장 자리맡아 뭐? 대기업 이윤을 중소기업과 공유? 또 다음달 재·보선에 나가니마니, 어구구. ‘폴리 대학총장’들이여, 아예 지성인이라고 하지를 말든지. 태조 이성계 시대의 사관 신개는 이성계가 사관들에게 실록을 보자고 하자 상소문을 올린다. “전하께서 기록을 보고자 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나라를 세운 임금은 후세의 전형이되는 법이거늘.” 선비의 절개. 대학총장들이 권력에 들어가 대한민국 발전에 뭘 기여했다는 것? 주구(走狗), 잘해야 대독총리! 끝도 없는 지성의 타락이여! 하버드대 총장, 도쿄대 총장, 베이징대 총장, 아니 후진국 총장도 이런 예 없다. 대학총장부터 정치권 마당발 ‘폴리’이니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받을 수 있나? 이런 병(病) 고쳐야 선진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