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李수녀가 말하는 故 김수환추기경… ‘왈가닥 애교’ 보이면 언제나 빙긋이 웃기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수도원 생활은 틀 속에 있으니 답답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희생과 금욕, 절제뿐만 아니라 행복, 기쁨, 긍정이 또한 함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추기경님을 종종 사석에서, 공석에서 뵐 수 있긴 했지만, 2008년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좀 더 가까이 뵐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늘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서 왈가닥처럼 행동하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어 주시던 모습도 그립다.’

이해인 수녀가 옆 병실에 입원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회고한 글이다. 당시 중환을 앓고 있던 추기경 앞에 이 수녀가 보인 ‘왈가닥 애교’란 무엇일까. “말할 기운이 없어서 누워 계시는 분에게 무슨 정숙한 태도로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냥 웃으시라고 제가 오버하는 행동을 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양팔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보이거나, 영어로 경쾌하게 ‘How do you feel this morning?(오늘 아침 어떠세요)’이라고 말씀드려요. 그러면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I’m so fine, I’m well(응, 좋아)’이라고 답해주시는 거예요. 거기서 간병하는 분들이 저에게 ‘수녀님 오시면 추기경님께서 좋아하시니 간식 먹을 때 와서 함께 먹으라’고 하더군요. 깨죽을 함께 먹으며 추기경님이 좋아하실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드리는 거죠. 추기경님 젊었을 적에 소녀 수녀님들과 있었던, 저희만 아는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추기경님, 그때 그 수녀님 편애하셨죠?’라고 말씀드리면 유머러스한 목소리로 ‘말할 수 없어’라고 하시며 즐거워하셨어요.”

이 수녀는 추기경이 젊은 사제였을 때 아꼈던 수녀들을 병상에서 만나게 해 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노수녀가 돼 있는 네 사람을 부산, 경남 고성 등지에서 한꺼번에 올라오게 해서 추기경과 함께 사진도 찍는 만남의 시간을 갖게 했던 것.

“추기경님께서 재활 치료를 받고 오실 때 ‘오늘은 모습이 좋아보이시네요?’라고 했더니 ‘난 비로소 본래 내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지’ 하시더군요. 그게 얼마나 찡해요. ‘좋기는 뭐가 좋아, 나날이 시들어가는데…’ 할 수도 있잖아요. 농담 속에 시사하는 바가 있었어요. 평범한 듯하면서도 한 계단 뛰어넘는 게 있었지요. 저는 추기경님을 뵈며 깨달았어요. 가장 거룩한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과 맞물려 있구나. 입만 열면 예수님,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