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레고·낡은 타자기

전통의 재해석, 동서양 요소의 접목을 시도하며 젊은 작가 못지않은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해 왔다. 플라스틱 레고, 크리스털, 못을 소재로 작업하는 황인기(60)씨, 낡은 타자기와 지구본까지 끌어들이며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접목시켜 온 유선태(54)씨. 평면회화에서 독특한 소재와 기법을 실험해 온 두 작가가 5월 개인전을 통해 현재 진행형의 실험작들을 공개한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대표작가’ 황인기 작품전이 29일까지 미술관에서 열린다. 유선태 개인전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9일까지 펼쳐진다.

# 황인기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전 = 시계 차 가방 등 해외 명품 로고가 새겨진 화판에선 퀴퀴한 냄새가 난다. 된장을 섞은 회반죽이 칠해진 작품에는 짚풀 나뭇가지가 얹혀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표면이 쩍쩍 갈라지고 상표 로고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색색의 플라스틱 레고가 박혀 있는 작품은 멀리서 보면 동양의 전통 산수화, 세잔의 정물화 및 오늘의 뉴스 사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다.

아르코미술관이 1999년부터 진행해 온 대표작가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새 흐름을 이끈 전위 작가를 재조명해 보는 기획.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황씨가 올해의 대표작가로 선정돼 개인전을 연다. 그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대가의 산수화나 대도시 풍경의 이미지를 못·레고 등의 소재로 재구성해 또 다른 풍경을 펼쳐 낸다. 기존 이미지를 확대시켜 디지털 픽셀 형태로 전환시킨 후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네모 칸마다 실리콘을 쏘거나 전통 물감 아닌 매체를 촘촘히 박아 이미지를 변형시켰다.

독특한 디지털마인드 작품의 시작은 1992년쯤 파주 작업실 주변의 농촌 풍경을 나무판에 금속 못을 박아 표현하면서부터. 황씨의 실험은 레고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진분홍 크리스털 소재의 산수화, 된장 회반죽 소재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및 아프리카 어린이와 이라크전쟁 등 현장 사진을 해체한 ‘플라 차일드’ 시리즈로 이어진다.

# 유선태의 ‘말과 글, 자전거 타는 사람: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전 = 작업실 풍경 그림의 대형 우표가 부착된 항공 봉투의 송·수신자 칸에 그려진 ‘자전거 탄 사람’과 ‘바위 위 소나무’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화 기법의 접목을 시도해 온 작가 자신의 상징이다. 익명 작가들이 그린 네덜란드 정물화 속 백화만발한 꽃 이미지를 재현한 꽃 그림에도 화병 사이로 자전거 탄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품에는 빨간 사과와 소나무를 비롯해 음악 기호인 포르테, 이젤, 저울, 액자, 사다리 등이 반복해 등장하며 이질적인 사물과 공간을 결합시킨 초현실적 풍경을 드러낸다. 또한 동양화의 표현 기법인 준법처럼 화면 가득 ‘글’과 ‘말’이란 두 글자를 꼼꼼하게 그려 넣었다. 동서고금을 잇는 글·말과도 같은 미술 세계를 은유하는 표현이다.

가나아트센터 개인전을 통해 유씨는 피카소 달리 정선 신사임당 등 동서양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전거 타는 사람: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란 제목은 자유분방한 에술가의 상상력으로 명화의 숲을 여행하며 느낀 것을 재구성하고 예술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작가가 고향 전주의 풍경을 되살려 낸 전원, 동양 산수화를 묘사한 ‘풍경’ 위로 책 사과 악기 및 자전거 탄 사람이 들어섰고, 일부는 캔버스 밖에 타자기 항아리 등을 덧붙여 그린 듯 시공간의 확장을 꾀한다. 서양 명화를 겹겹의 액자처럼 쌓은 ‘예술의 숲’은 작가 자신에게 영감을 준 거장들에 대한 헌사다. 고물상에서 구한 지구본과 타자기를 화판처럼 활용한 입체 작품도 선보인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