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朴대통령 앞서 ‘박서~방’ 불렀다 인생 종칠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민요의 여왕’ 김세레나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 자택에서 보석 장식의 상아색 드레스를 입고 인터뷰 도중 미소짓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세레나의 길’을 열창하는 모습.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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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평론가·팬들로부터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기 오래 전 ‘원조 아이돌 가수’ 김세레나(64·본명 김희숙)는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보’라는 애칭을 얻었다. ‘민요의 여왕’ 김세레나는 서울 속 작은 프랑스라 불리는 서래마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4시 서초구 반포4동 김세레나의 빌라 1층 거실에서 바라본 골목길 건너편 풍경은 파리 시내 유치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긴 행렬을 이룬 프랑스인 엄마들이 인형 같은 푸른 눈의 아이들을 데려가는 풍경에 한눈이 팔린 사이, 김씨는 보석 장식의 상아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디너쇼 무대’에서 보던 성장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예순을 넘기고도 젊은 시절의 몸매와 고운 피부를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쾌활하고 격정적이며 거침없고 솔직담백한 성격을 에누리없이 드러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낯선 손님에게 살갑게 달라붙던 잿빛 푸들 ‘뽀뽀’와 김씨가 포즈를 취했다.

첫 질문으로 왜 세례명을 예명으로 사용하게 됐는지부터 물었다.

“어릴 적 받은 세례명이 예뻐 동아방송에서 주최한 가요백일장 노래자랑 장원하고 난 다음에 신부님께 세례명을 예명으로 써도 되느냐고 물었어요. 신부님께서 ‘나쁜 데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름 내는 데 쓰는 것이므로 좋다’며 환영하셨지요.”

―민요가수가 서양 이름을 쓴 것 자체가 파격적 발상인 것 같은데요.

“언밸런스한 듯하지만 상당히 개성이 있었어요. 제가 생긴 게 이국적으로 생겨 ‘혼혈’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지요. 피부가 희고 눈이 옴팍하며 코가 오뚝해서 한국 오리지널(토종)이 아닌 것 같다고 그랬어요. 얼굴하고 노래하고 이름하고 다 제각기 따로 노는 듯하면서도, 굉장히 잘 조화를 이룬 편이었죠. 부조화 속의 조화랄까요.”

―결과적으로 직접 예명을 선택한 안목이 탁월한 셈이었군요.

“그때 당시 고1인 17세였는데, 제가 생각해도 머리가 잘 돌아갔어요. 가요백일장에서 장원을 해서 받은 상금이 3만원이었어요. 당시 버스요금이 5원, 택시비가 30원 할 땐데, 어린 나이에 굉장히 큰 돈이었어요.”

김씨는 “박재란씨의 노래 ‘강화도령’ ‘맹꽁이타령’을 불러 장원이 됐고 저와 경합을 벌인 가수 김부자씨가 애석하게 차상으로 상금 1만5000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교생 김세레나는 3단고음 ‘아이유’처럼 데뷔하자마자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노래를 사사한 스승을 물었더니 “그런 것 없다”며 혼자 알아서 배웠고,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클래식이면 클래식, 국악이면 국악, 창이면 창, 가요면 가요 뭐든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요. 창극, 클래식 공연하면 꼭 뽑혀나가 불렀어요. 가요도 흉내를 잘 내서, 교실에서 선생님 안 계실 때면 앞에 나가 노래하고 연극하고 그랬지요.”

김씨는 노래, 연극, 무용 등 못 하는 게 없을 정도로 예능 감각과 끼를 타고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 중·고교 때 연극, 무용, 고전발레를 두루 섭렵했다. 학교 예술제는 그의 독무대가 됐다. 명동성당 성가대에서 솔로를 맡았고 성당 축제 때는 ‘인기 만땅’인 명물로 통했다.

김씨가 어린 나이에 가요계를 휘어잡은 원천은, 타고난 끼 외에도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버무려 새 장르를 창조한 창의성에 있었다. 국악인 민요와 양악인 가요를 접목한 시도가 그것이다.

“국악을 현대음악에 맞춰 결합한 것은 제가 처음이었지요. 민요를 대중화하기 위해 장구로 맞추던 굿거리 장단을 드럼으로 연주했고 관악기와 현악기를 국악에 접목시키는 등, 북이나 장구에 맞추던 민요를 양악 반주 등 현대음악에 맞춰 불러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국보’라는 애칭을 얻게 된, 청와대 파티에 초청받아 박 전 대통령 앞에서 처음 공연할 때를 김씨는 생생히 기억한다. 김씨는 “‘저기 각하 옆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박 전 대통령이 너무 좋아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제게 ‘내가 팬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요를 이렇게 불러서 많이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니까 국보라고 불러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하니까 당시 동석한 외무부장관 등 장관 몇 명이 ‘예, 맞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이 갑돌이와 갑순이를 1절부터 3절까지 가사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불러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제 노래는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그리고 ‘한없이 울었더래요’ ‘달보고 울었더래요’ 이런 데서 자꾸 헷갈려 틀리기 일쑤지요. 유심히 들었는데 하나도 안 틀리는 걸 보고 ‘저분이 우리 민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진짜 내 팬이구나’ 하고 느꼈죠.”

그때부터 김씨는 어린 나이에 방송에서 자기 자신을 “안녕하세요. 국보 김세레나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 때문에 여자 연예인 등의 시샘도 많이 샀다.

하지만 열혈 팬인 대통령을 든든한 ‘백’으로 둔 국보 김세레나는 하마터면 ‘망언죄’에 걸릴 뻔했다. 박 전 대통령 앞에서 구성지게 ‘떠나~가는 박 서~방’이란 멘트를 날려 일대 소동이 발생한 것이다. 파티 장소는 신라호텔 영빈관.

“별 의미 없이 재미있게 분위기 띄운다는 게 그렇게 됐어요. 박 전 대통령이 제 노래 ‘갑돌이와 갑순이’를 부른 뒤 ‘우리 각하께서 좋아하시는 ‘방랑시인 김삿갓’을 부르겠습니다 하고 ‘떠나가는 박 서방’을 신바람나게 불렀죠. 그순간 박 전 대통령은 ‘허허허’ 하고 호탕하게 웃기만 했는데, 다음날 난리가 났지요.”

파티에 참석했던 문화공보부 등 관계기관에서 “대통령 보고 떠나가라는 얘기냐, 망언이다”며 크게 문제 삼을 분위기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연장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다. “다음날 주위에서 정말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기에 전 ‘뭐가 잘못됐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지요.” ‘떠나가는 박 서방’ 사건은 문화공보부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아무 소리 안 하고 웃기만 했고, 팬이라서 좋아하는 노래 부른 것으로 오버할 것 없다’고 판단해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김씨는 20세를 넘기기 전에 가수 인생을 종칠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씨는 스스로 “지금까지 청와대에 가장 많이 초청된 연예인”이라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민요 사랑과 애창곡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박 전 대통령 외에 민요를 좋아하신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보다 더 심하게, 진짜 제 팬이었어요. 그분은 대통령 되기 전 소장 시절에 ‘부산의 기차역에서 빨간 비옷에 부츠를 신고 가는 제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 고백한 적이 있지요. 제 노래를 좋아한 열성팬이어서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사절단이 오면 무조건 제가 초청됐지요. 파티 후 받는 출연료도 (다른 가수에 비해) ‘두따블 세따블’ 받았지요.”

―전 전 대통령의 애창곡은.

“술만 들면 ‘애수의 소야곡’을 불렀지요. 제 노래는 어려워서 못 배우겠더라고 했어요. 그분은 노래보다는 팬으로 저의 모든 것을 좋아한 것 같아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애창곡은.

“파티 때면 ‘베사메, 베사메 무초’를 열창하고, 플루트를 즐겨 불었죠. 전 전 대통령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했어요. 그분도 열렬한 팬으로, 외국사절단 파티보다는 자기 가족들, 육사·고교·중학교 동기 파티 등을 할 때 제가 꼭 초청돼 갔죠. 그분은 제가 댁에 초청되는 날이면 아침부터 제 테이프 틀어놓고 노래 연습하는 식이었어요.”

김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 총수 때 알고 지내던 시절, 파티할 때 절 찾고 굉장히 잘해줬다”며 “청와대 간 뒤에는 몇번 초청되기는 했으나 그분 노래는 통 못 들어봤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청와대 시절 가끔 초대해줬지만, 그다지 가까운 인연은 못 됐다.

국악을 대중화한 민요가수로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된 김씨는 청와대 외국사절 행사와 재벌들의 파티 등에 단골로 초청됐다. 김씨는 뛰어난 화술로 좌중을 휘어잡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했다. 행사 마지막 손에 손을 잡고 마이크로 ‘강강수월래’를 불러 신명나게 마무리하며 사회자 역할까지 겸해 당시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렸다. 더구나 임기응변으로 혼자 익힌 일본어·영어·중국어로 파티에서 분위기를 맞추는 데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씨 등 권력 실세들도 김세레나가 없으면 큰 행사에 누가 분위기를 맞추느냐며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씨는 “일본 디너쇼 무대에서 사회자 없이 혼자 1시간40분간 무대를 꾸려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대통령 및 남자 연예인 등과의 숱한 스캔들로 여러 차례 방송출연 정지를 당해 고초를 겪었다. 방송출연 정지로 혼쭐이 난 김씨는 “인생 끝나는 줄 알았다”며 수면제로 자살시도를 했지만 이후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도움으로 방송출연이 재개돼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김씨는 매니저도 없이 혼자 험한 파도를 헤쳐가야 했다. 그 어려운 순간들을 헤쳐나간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김씨는 “그 모든 걸 노래로 이겨냈다”며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 ‘세레나의 길’을 불렀다.

“이제 난 나의 길을 갑니다. 파도가 밀려와도 그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갑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노래가 있어 외롭지 않아요. 노래가 있어 슬프지 않아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나의 길 영원의 길 행복이 있는 길 나의 길 영원의 길 노래가 있는 영광의 길 나의 길 영원의 길 기쁨이 있는 길 나의 길 영원의 길 노래가 있는 세레나의 길.”

고 장욱조씨가 작곡한 노래다. 김씨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디너쇼 때에 항상 마지막 곡으로,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할 때도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부르며 막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전 이 길을 갑니다. 노래가 있어 이 길을 행복하게 살아왔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건 모두 노래 때문이지요. 앞으로 이 길을 갈 것이고 제가 팬들에게서 받은 고마움을 항상 겸허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도 좋은 일하며 살 겁니다.”

인터뷰=정충신 문화부장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