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주면 바보”…구두 가격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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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영등포역 인근에서 판매업자들이 각종 상품권을 할인해 팔고 있었다. 10만원짜리 금강제화 상품권은 8만원, 에스콰이어 상품권은 6만5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할인율이 20~35%에 이르는 셈이다. 바로 옆 가게에서는 에스콰이어 상품권을 7만5000원에 팔고 있었다. 업주들은 “엘칸토는 최근 워낙 가격이 떨어져 아예 상품권 유통이 잘 안 된다”고 밝혔다.

금강제화 상품권을 3장 구매한 김모(36)씨는 “여기서 상품권을 사서 백화점에 가서 구두를 구매한다”며 “‘남자 구두는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밝혔다.

포털 사이트에서 ‘구두 할인’으로 검색을 하면 백화점 세일 기간이 아닐 때에도 구두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소개돼 있다.

매장 직원이었다는 답변자는 “고객이 살 것 같은데 가격 때문에 망설이면 5~10% 정도 매장 매니저의 권한으로 할인해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구두나 소비 관련 카페에는 수시로 구두를 어떻게 하면 싸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글이 올라오고 “판매사원에게 말만 잘하면 싸게 구매 가능하다”는 정보와 경험담이 ‘친절하게’ 올라와 있다.

남성 구두 시장이 ‘가격 안정성’을 잃고 ‘거품 가격’이 생겨나며 소비자들의 ‘가격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구두 시장은 백화점에서도 유일하게 고객 끌어들이기(삐끼)가 허락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거친’ 시장이다.

◆상품권 남용으로 망가진 전통구두 브랜드 = 9일 업계 관계자는 “가격 안정성을 잃어버린 구두 시장은 결국 표시된 가격을 믿고 구매하는 ‘착한’ 소비자만 바보가 되는 ‘신뢰를 잃어버린’ 시장이 돼 버렸다”며 “업계 스스로 브랜드 이미지를 갉아먹는 출혈 경쟁을 멈추고 가격에도 거품을 빼야 업체와 소비자가 윈윈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품권이 시장에 남용돼 30% 내외의 할인율을 기록할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사실 심한 곳에선 반값으로도 상품권 구매가 가능하다”며 “업체가 어렵다 보니 현금화가 급해 상품권을 시장에 많이 내놓고 할인율도 많이 높였는데 그렇게 할수록 브랜드 이미지만 망치는 꼴이 됐다”고 토로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도 “고객 입장에선 싸게 살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품권 할인율만큼) 그만큼 가격 거품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며 “상품권에 따른 이익률 저하는 상품 개발 저하로 나타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손해”라고 밝혔다.

업체들이 상품권을 포기 못하는 것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권 남용→할인율 상승→가격 거품과 상품 개발 여지 축소의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디자인 베끼기가 발목잡은 캐릭터화 브랜드 = 캐릭터화(탠디, 소다, 미소페 등) 시장을 둘러 보면 비슷한 디자인의 신발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을 내놓고 하루만 지나도 경쟁사의 디자인을 베낀 제품이 나올 정도로 제품 차별화가 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품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저가 경쟁만 하게 된다”며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저가 경쟁이 ‘정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고객마다 같은 매장에서 같은 신발을 서로 다른 가격에 사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남성 구두 가격이 몇년 새 부쩍 올라 30만원을 넘는 제품도 나오고 있다”며 “소비자들 입장에서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널려 있으니 체감하지 못하지만 이 정도 상승폭이면 업계가 할인율을 감안해 가격을 올리는 것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가격 불신’ 해소해야 = 결국 구두업계가 눈 앞의 ‘떡’만 보고 남발한 상품권과 경쟁업체 디자인 베끼기가 시장의 혼란만 가져오고 소비자들의 ‘가격 불신’만 키운 만큼 업계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몇년 전 구두 시장과 비슷하게 백화점 내에서 공공연한 가격 할인(DC)이 이뤄졌던 남성 정장 품목에서 시행됐던 ‘그린프라이스제’가 해법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린프라이스제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대신 임의로 가격을 할인해 주는 행위를 자제하는 것으로 백화점 업계에선 그린프라이스제 시행으로 남성 정장의 가격 거품과 임의적인 할인 판매는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디자인 베끼기 역시 업계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 브랜드들이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가 창의적인 디자인과 끊임없는 제품 개발로 승부할 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되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기·노기섭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