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아날로그파 지키는 무림고수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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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성시경(32·사진)은 할 말이 많았다.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한 5분 대답하더니 “더 얘기하면 나머지 질문 받을 필요도 없겠다”며 계속 말을 던졌다. 그는 신인처럼 얘기하진 않았지만,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말했다.

“이번 음반에서 목소리 톤이 약간 변했어요. 술, 담배 때문인가? 군대에서 노래를 너무 억세게 불렀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차이점을 확인하는 순간, 노래하는 마음가짐은 똑같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음반이란 생각을 했죠.”

3년 만에 세상에 나온 7집 ‘처음’은 따뜻한 음색으로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그의 창법이 온전히 숨쉬고 있다. 현악기와 나일론 기타를 뚫고 전면에 나선 목소리는 오로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읊는 연서(戀書)다. 그 설렘과 애절함이 너무 그윽해 뭇 여성의 눈물을 왈칵 쏟아내게 할지도 모를 일. 음반은 그렇게 아날로그의 향기를 듬뿍 베어 물고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는 인간미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노래 전곡이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부르는 듯하다.

“언제는 안 그랬나? 하하. 내게 노래는 언제나 연기다. 33세 가수인데, 내가 무얼 하는 짓일까, 너무 유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누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겠지 하며 또 그렇게 부른다. 스스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했을 뿐인데, 그게 하나의 스타일이 돼 버렸다. 편곡이나 반주, 가창하는 자세가 데뷔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운드가 훨씬 간결해지는 등 ‘포장’에 별로 신경 쓴 것 같지 않다.

“요즘 엔지니어들은 예쁜 포장을 위해 숨소리조차 없애려고 한다. 난 뭐랄까. 아날로그 가수의 마지막 주자 같은 느낌이 남아 있어서인지, 디지털로 아날로그 흔적들을 마구 베는 걸 참지 못한다. 이번 음반에서도 모두 죽인 숨소리를 다시 다 살려내느라 진땀 뺐다.”

―아이돌과 스스럼없이 경쟁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옛날 사람’이라고 자처한다.

“추석 전에 아이유가 ‘음반 꼭 1등하라’고 하길래, ‘난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말했더니, ‘오빠가 1등을 해야 발라드 후배들이 무대에 많이 서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는 게 겁도 나지만, 아이유 말대로 사람들에게 많이 들려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난 옛날 가수니까’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서 히트곡을 만들기보단 좋은 곡을 알리는 데 더 신경 쓰는 편이다.”

그가 ‘옛날 사람’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 중 인상적인 것이 박학기, 한동준 등 1980년대 선배 포크 가수들과의 어울림이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그가 처음 선 무대도 박학기가 연출한 ‘김광석의 추모무대’였다. 성시경은 이번 음반을 만들기 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작곡한 강승원과 여러 차례 술잔을 기울이며 그의 옛날 감성이 투영된 아날로그 곡을 듣고 이렇게 얘기했다. “형, 그 곡 2PM 줄 거 아니면 나한테 줘.” 이 음반의 첫 곡 ‘처음’은 그렇게 삽입됐다. “군에 3년 갔다왔고, 그렇게 변한 세상에서 전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시작하면서도 트렌디한 음악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이번 음반은 ‘처음’같은 느낌 때문에 여러모로 중요할 것 같다.

“5집 때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했는데, 그땐 감이 있었다. 노래가 잘될 것 같다는 자신감 같은?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감이 없다. 그래서 이 음반이 잘되길 개인적으로 바란다. 잘돼야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에 고무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군에 갔다오니까, 남 잘되는 게 배가 아프더라. 그래서 더 겁도 많아졌다. 이 음반 안 되면 나라가 미워질 것 같다. 하하.”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설사 성적 10점 더 나온다고 해도 난 출연하지 않을 것이다. 잊어진 선배들이 새로 조명받는 등 아무리 순기능이 많다고 해도 1등을 위해 가수들이 발발 떠는 모습을 봐야 하는 현실은 너무 참혹하다. 잘나가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 많이 했지만, 결론은 안 나가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이젠 선배들이 성시경에게 ‘아날로그 울타리’문을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것 같다.

“무당파의 마지막 사제로 들어간 것 같다. 선배들처럼 날아다니고 싶은데, 이제 장풍을 좀 쏘기 시작한 단계랄까. 울타리 저 밖엔 권총을 들고 다니는 최첨단 무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무술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무림의 고수가 되고 싶다. 그래서 잠깐 빛을 보고 사라지는 실력자가 아닌, 오랫동안 후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무술의 달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