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女장애인의 올레길 휠체어 여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윤선(사진 왼쪽)씨와 하석미씨는 곳곳에서 수많은 벽과 마주치면서도 제주여행 내내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제주시 명림로 절물자연휴양림의 숲길을 ‘걷는’ 전윤선(왼쪽)씨와 하석미씨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이겨내고 감행하는 휠체어 여행은 뒤따라올 장애인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낼 것이다.

휠체어 두 여성 장애인과 함께 한 제주 여정은 고행과 다름없었다. 어렵게 들어선 식당에서 ‘밥이 없다’며 내몰리기도 했고,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 왕복 10㎞를 가야 했다. 높고 낮은 턱은 벽이 돼 길을 가로막았고, 그보다 더 높은 편견은 이들을 상처받게 했다.

지난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부근 해안도로.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던 전윤선(여·45)씨가 ‘휠체어 여행작가’란 생소한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내밀었다. 역시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환하게 웃던 하석미(여·36)씨는 자신을 ‘휠체어 여행전문가’라 소개했다. 보행 장애인이면서 휠체어를 밀어 주거나 손잡아 줄 보조자 한 명 없이 서울에서부터 감행한 이들의 제주 여행. 그들의 휠체어 여행을 7일까지 1박2일 동행 취재했다.

이들은 여행 내내 이동을 막는 물리적 계단의 턱보다 더 크고 깊은 무지와 편견을 이야기했고, 거기서 받은 상처와 그럼에도 다시 여행 길에 나서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여행 중에 경험했다며 털어놓은 우리 사회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 횡포는 가히 야만에 가까웠다.

이들은 얼마 전 다녀온 정동진 여행에서 묵을 방을 구하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노숙한 사연을 소개했다. 휠체어를 밀고 들어간 수십 곳의 숙소 주인들이 ‘방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장애인 손님을 꺼리는 뻔한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나왔어요? 싸우지 않고?”라는 질문에 전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싸워본들, 그래서 이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들은 싸우지 않는다. 감정을 앞세운 싸움이 ‘장애인은 그악스럽다’는 더 큰 편견으로 돌아올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날 밤을 불 꺼진 정동진역 구내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보냈다.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나쁜 마음’이 아니라 ‘몰이해’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는다면 이런 편견들이 허물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들도 싸울 때가 있다. 하씨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공공기관과는 맞서 싸운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싸움은 의외로 그들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곤 한다. 그들의 무기는 싸울 때조차 해맑게 웃는 미소다.

이들과 동행한 제주 여행은 고행과 다름없었다. 관광지마다 높고 낮은 턱이 막아 섰고 장애인용 화장실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있을 뿐. 작은 배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뒤엉켜 거대한 벽이 돼 가로막았다. 어렵게 들어선 식당에서 ‘밥이 없다’며 밀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애월읍에서는 노천 벤치에서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먹었고, 하귀해안에서는 컵라면으로, 절물휴양림에서는 어묵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들은 왜 이토록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전씨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는 희귀병이다. 그를 절망에서 구원한 것은 ‘여행’이었다. 2005년 그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휠체어를 타고 인도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흙바닥에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이동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지 장애인들을 만났다. “그렇게 살면서도 웃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곤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도까지 다녀왔는데 못 갈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인도 여행기로 ‘휠체어 여행작가’란 직함을 얻은 그는 곧 본격적인 장애인을 위한 여행의 기록을 시작했다. 하씨는 유전질환인 골이형성증을 앓아 성장판이 닫히는 바람에 자라지 않은 몸과 손발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는 딸이 있다. 어쩌면 그는 딸을 위해 끝나지 않는 여행을 계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견의 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다 보면 그의 꿈대로 ‘장애인과 약자들이 편안하게 여행하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제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