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몹쓸 짓’ 똑똑히 밝힌다…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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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인생 / 제이시 두가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문학사상사

“난 내게 일어난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필립 가리도에게 똑똑히 알려주고 싶다. 그에게는 내 인생, 내가 가족과 함께 나누었어야 할 내 인생을 훔쳐가버린 책임이 있노라고.”

지난 2009년 8월 세계는 미국에서 날아온 한 사건에 경악했다. 성범죄자로 가석방 상태에 있던 한 남자가 열한 살 소녀를 납치, 무려 18년간 성노리개로 데리고 살면서 두 아이까지 낳게 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1991년 6월10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가던 열한 살 소녀는 납치돼 2009년 8월26일 스물아홉 살이 돼서야 구출될 수 있었다.

책은, 이 충격적인 사건의 피해자인 제이시 두가드가 직접 쓴 사건의 내막과 과정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납치당한 후 학교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제이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담아낸 책은,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18년간에 걸친 그녀의 생활상을 전하고 있다.

등굣길에 납치당한 어린 소녀는 이유도 모른 채 ‘비밀의 뒤뜰’에 감금된 채 18년을 살았다. 납치 직후부터 성폭행당한 소녀는 열네 살 때 첫아이, 열일곱 살 때 둘째 아이를 낳았다. 물론 성폭행범 필립 가리도의 애들이었다. 가리도는 이미 강간과 납치 혐의로 10여 년의 복역기록을 가진 마약중독자였다. 제이시는 책에서 자신이 겪었던 학대의 세세한 부분까지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납치 직후 납치범과 발가벗고 샤워를 해야 했고, 창고 같은 곳에 수갑이 채워진 채 홀로 방치됐으며, 성폭행에 심지어 ‘달리기’라고 부르는 섹스 마라톤까지 강요받았다. 원하지 않는 임신과 병원에도 갈 수 없어 창고에서 치러야 했던 출산, 용변을 위한 양동이, 얼마 안 되는 옷, 기억날 때면 가져다주는 인스턴트 식품 등 그녀는 납치범의 집 뒤뜰에서 가건물 사이를 옮겨다니며 처참하게 생활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납치된 제이시는 납치범한테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극도의 외로움을 그 남자에 의해 위로받는다. 납치범 외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던 탓에 나중에는 가리도가 와주길 기다리기까지 한다.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인 셈이다.

결국 두 딸까지 낳은 제이시는 딸들을 위해 탈출을 포기한다. 언제가는 엄마를 만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자식을 위해 처참한 상황을 감내하며 살게 된 것이다.

전과가 있었던 탓에 정기적으로 보호관찰관들이 가리도의 집을 방문하던 중 드디어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보호관찰관들에 의해 비밀은 드러났다. 18년을 한가족처럼 살아온 제이시는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두려워하다 마침내 18년간 숨겨온 자신의 이름을 종이에 적는다. 책에는 제이시가 길렀던 고양이, 개, 새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실려 있다. 아울러 매순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생활한 기록이 담겨 있다. 제이시는 가리도의 인쇄 사업을 거의 도맡아 생활을 꾸리고,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학습자료를 만들어 공부시켰다.

제이시는 이 책을 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한 가지는, 납치범 필립 가리도가 그 오랜 세월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가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비슷한 사정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 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