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 “‘박근혜-야근혜’ ‘문재인-문제일’…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드라마 ‘주몽’의 소서노,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 ‘제중원’의 석란, ‘가시나무새’의 정은…. 배우 한혜진(31)은 굵직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며 늘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뭔가 아쉬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차분하고 결곡한 이미지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힐링 캠프’ 사회를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모험적으로 도전해서 틀을 깨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사람을 치유한다는 ‘힐링’의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눈이 소담스레 내리던 31일 오후, 문화일보에서 만난 한혜진은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예능 MC에 도전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2011년 7월부터 SBS 토크쇼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를 이경규, 김제동 등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특별히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2, 3회 가면서 두려움이 생겼어요. 게스트의 질문을 정확히 듣고 포인트를 짚어서 질문을 해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경규, 제동 선배님을 흉내내다가 큰코다쳤죠.”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게스트의 말에 리액션을 하는 이경규, 김제동을 따라 하다가 한 마디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는 것.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대본을 달달 외웠어요. 드라마 연기하듯이 집에서 혼자 질문을 던지며 연습을 했어요. 그랬더니 녹화 현장에서 다른 질문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한혜진은 대표적인 ‘천사표’ 이미지의 배우다. 평소 동료 배우와 촬영 스태프를 한결같이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힐링 캠프’ 사회를 보면서도 초기에는 “게스트 기분을 상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탓에 과감한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러나 7개월여가 지난 지금에 그는 게스트를 직설화법으로 공격해 당혹스럽게 만들며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힐링’이라는 내용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프로그램에 순발력 있는 재치 어법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말 편해졌어요. 전에는 게스트에 따라 흔들렸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이가 어떻게 되든, 직책이 무엇이든 게스트에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잘하지 못해도 기다려주며 격려를 해 준 경규, 제동 선배님께 너무 고맙습니다.”

그는 게스트의 이야기를 녹화 때 제대로 뽑아내기 위해 휴식 시간에 침묵을 지키는 이경규의 프로 정신, 어느 누구와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김제동의 소통 능력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경규 선배님은 방송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옛날 선비 같은 모습이 있어요. 저급하거나 음란하지 않아도 대중을 만족시키는 좋은 코미디, 좋은 영화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세요.”

‘힐링캠프’에는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보이지 않던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한혜진은 그 이유에 대해 “깊은 속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프로그램의 본질을 잘 봐줬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유준상, 이미숙, 최민식 등 선배 배우들이 나올 때마다 후배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고백을 통해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이미숙 선생님 정도 되면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기해도 잘하시겠지 싶었는데, 한 대목을 100번 씩 연습한다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어요. 아, 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노력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그는 또래 여배우인 이민정이 출연했을 때 “남들이 제가 경쟁심을 느끼는 것으로 볼까 봐 어려웠다”고 솔직히 말했다. “민정씨도 저를 대하는 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정말 잘해 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촬영 전부터 했어요. 다행히 민정씨가 활발하게 즐겁게 해 주셔서 저도 편하게 질문을 할 수 있었지요.”

한혜진은 “민정씨가 스스로를 강남 5대 얼짱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오해받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그것을 풀고 싶은데 오히려 또 다시 오해를 살까봐 두렵다고 하더라”며 “잘 해명이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민정이 자신을 5대 얼짱이라고 지목한 것과 관련해서는 “저는 양재 말죽거리에서 떡볶이 먹는 평범한 여고생이었을 뿐”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출연했을 때, “저 분들이 과연 스피드 퀴즈 같은 것을 할까 생각했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며 “가까이서 보니 TV와 신문에서 볼 때보다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았다”고 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각각 ‘야근혜’, ‘문제일’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은 사전 준비가 없었던 애드립이었다고 밝혔다.

“그것을 시청자들께서 그렇게 재미있게 생각해주실 줄 몰랐어요. 그 이후로는 게스트가 나올 때마다 별명을 지어줘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려요.(웃음)”

그는 “저희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서 흉내내는 재주가 뛰어난데, 그 끼를 제가 물려받은 것 같다”며 또 웃었다.

한혜진은 최근 드라마 촬영을 재개했다. 2월부터 방송하는 의학 드라마 ‘신드롬’에서 의사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드라마에서는 사람의 몸을 치료하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두 가지 일을 설명한 그는 “토크쇼 MC가 연기를 방해하는 일이 오면 어떨까 고민이 되지만, 지금은 병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글 =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