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2 대한민국 리포트>‘울지마 톤즈’ 보고 펑펑… ‘50년 간호인생’ 나누려 칠순에 말라위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수지 박사가 부산 서구 암남동 고신대 간호대학 장기려 박사 기념관에서 말라위 등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 =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한국 간호학 박사 1호. 대학교수, 총장까지 역임하고도 70대에 혈혈단신 머나먼 아프리카로 건너가 의료봉사 활동까지…. ‘한국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김수지(여·70) 박사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1년2개월 만에 20여일의 일정으로 한국에 잠시 들렀지만 국내에서도 너무 바쁜 일정 탓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지난 5일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 간호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고속버스 편으로 이날 오후 5시50분쯤 부산 금정구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말라위 국립간호대학 학장인 아드레스 말라타(여·48)씨를 대동한 채였다.

말라타씨는 한국의 선진 간호 의료를 보고 배우기 위해 김 박사와 함께 전국 간호대학 강연 및 교류 협약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각자 무거운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들었지만 부산의 북쪽 끝인 이곳에서 서남쪽 끝인 서구 암남동 고신대 의대까지 택시를 타지 않고 지하철로 이동을 고집했다. 듣던 대로 그의 성품은 소탈 그 자체였다. 고신대 간호대학과의 저녁 일정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지하철에서 그와 바짝 붙어 앉아 1시간가량 인터뷰를 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중년의 흑인 여자와 함께 탄 그에게 기자가 계속 소곤대면서 수첩에 메모를 하자 특이하다는 듯 지켜보는 승객이 많았다. 은퇴를 하고 손자 재롱이나 보면서 쉴 나이에 아프리카로 간 이유가 궁금했다.

“서울사이버대 총장을 2번 연임(4년)한 뒤 잠시 쉬고 있을 때인 2010년 12월4일 이태석 신부님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봤어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보통 오지에 봉사 활동을 가면 여러 명이 역할을 분담하는데 이 신부는 혼자였어요. 학교, 병원도 혼자 짓고 치료, 수술은 물론 음악 밴드부까지 운영했잖아요.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겠어요. 그렇게 힘든 일을 자신의 건강은 전혀 돌보지 않은 채 하나님의 소명으로만 알고 매진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 불치병에 걸려서 그만…. 그래서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조그만 봉사 활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하나님의 부름인지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박상은 전 안양샘병원 원장에게 아프리카 의료봉사 활동 얘기를 듣게 됐다. 박 전 원장을 통해 만난 사람이 백영심씨다. 백씨는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부터 22년 동안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에서 전도사 겸 간호사로 의료봉사 활동에 온몸을 던졌다.

백씨는 오랜 노력 끝에 말라위 수도 릴롱궤시에서 정유근 대양상선 회장의 도움을 받아 180병상의 제법 큰 병원(대양누가병원)과 간호대학을 설립했다. 그는 김 박사를 적임자로 보고 간호대학을 맡아 줄 것을 권유했다. 의료 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망설임도 없이 2011년 1월 초 말라위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양간호대학 학장을 맡아 신입생 30명을 뽑았다. 무려 1400여명이 지원해 경쟁률은 47대 1에 달했다. 올해 초 2기 입학생은 정원을 늘려 39명을 뽑았다.

“말라위의 현실은 열악했어요. 1인당 국민소득이 370달러밖에 안 되는 최빈국이다 보니 음식은 옥수수죽이 거의 전부였죠. 흙으로 만든 움막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처럼 환경이 열악해 전염병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국민 평균 수명이 39세에 불과할 정도였어요. 특히 시각장애인이 많은데, 평소 강렬한 햇빛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영양 섭취조차 부실해 백내장을 심하게 앓으면서 시력을 잃게 되는 거죠. 초기에 간단하게 치료만 해도 시력을 잃지는 않을 텐데….”

그는 이 신부의 삶과 말라위의 열악한 현실을 얘기할 땐 간간이 목이 메어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김 박사는 간호 인력을 양성하면서 백씨와 함께 대양병원의 환자들도 돌보고 있다. 응급 환자가 많은데도 간호 대학생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느릿느릿한 문화’ 태도를 보여 교육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는 빈혈로 쓰러지는 학생들에게 매일 달걀을 두 개씩 먹이는 등 학생을 돌보는 것부터 학교 수업, 행정 업무, 의료 활동까지 쉴 틈 없는 1년2개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책상 줄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학생들의 생활 습관까지 지도해야 했다. 지금은 간호 일을 열심히 배우면서 틈만 나면 춤과 노래를 즐기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는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 박사는 “현재 말라위엔 절대적으로 의사가 부족하다”며 “산후 처리를 못해 죽어 가는 임산부가 하루 160여명에 이를 정도여서 산부인과 및 외과 의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만 오면 의과대학과 대형병원에 방문해 의사들의 의료봉사 지원을 부탁하는 이유다.

그는 보건복지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릴롱궤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은코마지역에는 국내 기독교 모임과 지인들의 모금으로 장애인재활센터 및 취업기술센터도 한창 건립하고 있다. 유명 철학자인 손봉호(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고신대 석좌교수도 사재를 털어 도움을 줬다. 김 박사는 한국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얘기할 땐 우렁찬 목소리로 강조하는 등 건강해 보였다.

그는 “이제 나도 나이가 만으로 70세여서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매우 건강하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눈길을 외면할 수 없다. 너무나 착하고 순박한 이들 곁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은퇴 후에도 이렇게 평생 바쳐 온 천직인 간호사 일을 하면서 다시 봉사를 하는 것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노력한다고 밝혔다. 고향이 전남 여수인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군 내 좌익들의 반란 사건인 ‘여순 반란’ 사건을 겪었다. 당시 간호사 아주머니가 총상을 입은 청년을 밤새도록 극진히 간호해 결국 목숨을 살려 내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생명을 살려 내고 치료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걸 절실히 느껴 간호사가 되기로 어렸을 때부터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화여대 간호학과 입학부터 시작해 50년간 간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이날 저녁 고신대 복음병원에 있는 고 장기려 박사 기념관을 둘러보며 오래전부터 간간이 만나고 존경해 온 장 박사를 회고하기도 했다. 북한이 고향으로 가족을 북에 두고 온 장 박사는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인 ‘청십자 의료보험’을 창립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김 박사는 6일 고신대 간호대에서 ‘말라위 등 개발도상국에서의 의료 현실과 활동’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대양간호대학과 고신간호대학 간에 자매결연 교류 협정도 맺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약하고 도전 정신이 없다”는 평에 대해 그는 “해외에서 봉사하는 한국 대학생과 젊은이들을 보면 매우 진취적이고 자랑스럽다”며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젊은이들이 실의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 ”이라며 “잠재력이 크고 훌륭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할 만큼 할 일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같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평생의 반려자였던 김인수(전 고려대 경영대 교수) 박사와 9년 전 사별한 뒤엔 간호학에서 전반적인 사회복지 분야까지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2004년 이화여대 교수 재직 시절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해 낮에는 간호학과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컴퓨터로 공부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1남2녀의 자녀를 모두 대학교수 등으로 훌륭히 키우고 6명의 손자, 손녀까지 있다. 이런 가족들을 멀리하고 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누는 삶보다 행복한 삶은 없다’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다. 그는 말라위 사람들의 순박한 눈망울이 계속 눈에 어른거린다며 지난 7일 서둘러 말라위로 떠났다.

인터뷰 = 김기현 차장(전국부)
부산 = ant735@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