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드사 영업 창구에서 고객이 카드 가입을 위해 직원 안내를 받아 카드 가입 신청서 작성을 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kdh@munhwa.com
직장인 김모(33)씨는 최근 TV 광고를 보고, ℓ당 100원을 적립해 주는 새로 출시된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한 카드사 홈페이지를 찾았다. 카드사에서는 카드 발급을 위해서는 각종 약관에 ‘동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깨알 같은 글씨를 다 읽어볼 수 없어 무심코 ‘동의함’에 체크를 하던 김씨는 ‘개인(신용)정보의 선택적인 제공에 관한 사항’란에서 멈칫했다. 이 난에 체크를 하게 되면 카드사에 제공한 개인정보가 타 제휴업체에 제공돼 마케팅 목적 등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씨는 그래도 내 정보가 어느 업체에서 이용되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제휴업체명을 적어놓은 깨알 같은 글씨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김씨는 제휴업체명을 10여분간 자세히 봤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김씨가 가입하려는 카드에 대한 제휴업체 정보가 빠져 있었다.
의아해진 김씨는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카드사는 “올해 1분기 출시된 카드여서 아직 제휴업체명을 적어놓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결국 카드 가입을 하지 않았다. 내 정보가 어딘지도 모르는 회사에 제공돼 마케팅 목적으로 언제든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각종 업체들과 제휴해 회원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카드 가입 회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카드사들의 소극적 안내로 인해 고객들은 카드 한 장 가입을 하면 평균 4~5곳의 제휴업체에 내 정보가 넘겨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이를 알아도 어느 곳으로 넘겨지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주유소, 쇼핑몰, 영화관 등에서 고객들이 할인 및 적립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해당 업체들과 제휴를 맺어야 한다. 카드사는 제휴 시 할인 및 적립에 따른 비용 부담에 관한 협상은 별개로 카드 회원 개인정보를 제공하겠다는 합의를 하게 된다.
즉 카드사와 제휴를 맺은 가맹점들은 카드 회원의 개인정보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할인 및 적립에 따른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카드 회원 입장에서 보면, 카드사에 연회비를 내고, 전월 실적 조건을 충족하는 등의 부담 외에 개인정보가 어딘지도 모르는 제휴처에 넘겨지는 ‘비용 부담’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카드 설계사는 “카드 가입을 하면, 개인정보가 제휴업체에 넘겨진다는 사실을 고객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대개 한 카드당 4~6곳의 제휴처에 거의 모든 신용정보를 넘겨주고 있다. 카드 가입 당시 회원이 기재한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직업, e메일 주소’ 등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일부 가맹점에 대해서는 카드번호, 거래일시, 사용금액, 사용처와 신용카드 발급 및 해지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휴사들은 이런 개인 신용정보를 제공받아 카드사들과 공동으로 마케팅을 펼치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카드사들이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카드사들은 ‘깨알’ 같은 글자 크기로 고객 정보가 넘겨지는 제휴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눈에 띄는 곳에 안내를 하지 않아 고객들이 ‘숨은그림 찾기’ 하듯 제휴처 목록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어렵게 찾아야 하고, 해당 페이지를 찾아도 깨알 같은 글씨로 인해 제휴처 목록을 일일이 살펴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새로 출시된 카드에 대해서는 안내를 해놓고 있지 않는 카드사도 있었다. A카드사의 주유할인카드의 경우 제휴처 목록이 홈페이지에 고지돼 있지 않았다. 출시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직원 게으름으로 인해 제휴처 목록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B카드사는 일부 제휴처 목록만 홈페이지에 밝혀 놓고 있다. C카드사 역시 제휴처를 특정해 놓고 있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고객 회원정보를 대하는 카드사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도 할 말은 있다.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고객동의’를 받았고, 제휴처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고객들에게 할인 및 적립 혜택을 주기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카드사들이 개인정보를 제휴처에 제공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이를 명확히 고객에게 알려 최소한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개인정보가 넘겨지는 상황’을 꼭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고객 동의만 받으면 관성적으로 제휴처에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있고, 고객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A카드를 가입할 경우, 개인정보가 넘겨지는 업체가 몇 곳이고 어디인지 고객이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카드사들이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기은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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