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걸러낸 문제후보… 사라진 ‘도덕성 경쟁’

“여야의 ‘도덕성 경쟁’이 실종됐다.”

전례 없이 뜨거웠던 ‘4·11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여당도 야당도 표 계산만 하는 정치공학적 논리에 빠져 당연히 낙마시켰어야 할 ‘문제 후보’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극도의 정당 불신 속에 이번 총선을 맞으면서 여야 모두 쇄신과 ‘선거 혁명’을 다짐했지만 정작 선거전에 들어가서는 ‘제 머리 깎는 데’는 실패했다는 냉혹한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을 통해 탄생할 19대 국회가 ‘해머 국회’, ‘최루탄 국회’라는 오명을 얻은 18대 국회만도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1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왜 도덕인가’라는 책에서 도덕적·윤리적 가치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번 총선 과정에서 여야가 보여준 행태는 정반대였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여야가 도덕성 경쟁을 펼쳤다면 당연히 걸러졌어야 할 ‘문제 후보’들이 적지 않았는데 서로 상대 당 후보 공격에만 집중했다”고 꼬집었다. 이정희(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도 “총선을 통해 정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에게 줘야 하는데 공천부터 선거 과정 전반에 걸쳐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들이 ‘문제 후보’로 지목한 대상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민주통합당(민주당)의 경우 ‘과거 막말 파문’으로 각계의 사퇴 요구에 직면한 김용민(서울 노원갑) 후보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한명숙 선거대책위원장 명의로 사퇴를 권고했으나 그가 거절하자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석호익(경북 고령·성주·칠곡) 후보가 새누리당 공천을 받자 과거 강연 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며 공천 철회를 요구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응이었다. 석 후보는 자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새누리당 역시 김용민 후보 등 민주당 후보 공격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인 문대성(부산 사하갑) 후보, 성희롱 및 성상납 의혹까지 제기된 다른 후보들에 대해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문 후보에 대해서는 학술단체협의회조차 “표절이 확실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통합진보당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간부의 성폭력 사건 무마 책임자로 지목된 정진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례대표 4번에 배치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피해자 등이 공천 철회를 요구했음에도 통합진보당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양승함(정치학) 연세대 교수는 “여야 내부의 세력 재편은 이뤄졌지만 전반적인 정치행태 개혁, 공천 개혁은 찾아볼 수 없는 선거였다”고 꼬집었다.

오남석·민병기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