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臨政 수립 1919년 4월11일이 바로 ‘대한민국 元年’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완간 기념 국제학술대회’장 앞에서 집대성한 자료집들을 쌓아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고 강조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그는 자료집들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을 집대성한 김희곤(58) 안동대 교수. 8년 동안 51권, 각권 평균 800쪽씩 약 4만쪽으로 구성된 초대(超大)작업이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혹은 나라 밖을 부단히 오가며 자료의 파편들을 긁어모았다. ‘우리 역사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보존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는 의무감이 그를 어제에서 오늘로, 또 내일로 밀어냈다. 그에게 자료집 발간은 싯다르타의 보리수 밑 수행, 예수의 광야에서의 방랑과 같은 고행길이었을까.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자택에서 만났을 때 그는 만감이 교차한 듯 잠시 상념에 잠겼다.

편찬 작업 내내 김 교수에게 확신을 준 것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의 해라는 것이다. 평생 한국사를 연구해 오면서 가졌던 그 믿음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한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돼 독립된 국가로 완전히 설 때까지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국회)이 통치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광복 때까지 26년간 존립한 햇수를 보세요. 이 기간 동안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이 들어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임시정부나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집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도 여러 자료집과 서적들이 나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파편적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4년 말 편찬위원회가 구성됐다. 참여한 학자는 모두 7명이다. 김 교수가 위원장이 되고 고정휴 포항공대, 반병률 한국외대, 정병준 이화여대, 최기영 서강대, 한상도 건국대, 한시준 단국대 교수 등이 같이 일했다.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는 매년 두 사람의 연구자를 지원받았다.

김 교수는 임시정부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모아 보자, 그리고 번역문과 원본을 다 웹사이트에 공개하자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전체를 체계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일본 정부 기록 문건이든, 러시아나 프랑스에 있는 것이든 최대한 찾아 모을 수 있는 건 다 모아서 번역해 온전한 자료집을 만든다는 거였죠. 그리고 모든 국민이 이를 볼 수 있도록 전산화하는 겁니다. 연구자나 시민 할 것 없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요.”

8년 전 예측했던 제작 분량은 50여권. 제작 완료 후 그 결과는 놀랍게도 51권으로 마무리됐다. “우리의 노력으로만 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도록 해준 것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위대한 선조들과 순국선열들의 혼과 기백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 발굴된 자료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새것도 있고, 역사적으로 모호했던 것을 분명하게 한 것도 있고요. 또 파본이나 결본된 것을 복원시킨 것도 상당수 있습니다. 일단은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문서 중에 공개가 안 된 것을 찾았습니다. 임시정부가 당시 중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임시정부 자체가 중국 안에 있었던 게 그를 증명하지요. 중국 국민당의 외교문서 중에는 한국이 나중에 일제로부터 광복을 쟁취할 경우 어떻게 할지 토론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자료집 별책 마지막의 ‘국민대표회의’에 나오는 ‘레닌자금’ 관련 대목도 눈에 띈다. 국민대표회의란 192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 참여를 계기로 전 세계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192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모인 것을 말한다. 볼셰비키혁명에 성공한 러시아가 지원한 돈으로 회의를 열었다고 해서 ‘레닌자금’이라 불린다. “소수의 연구자들만 아는 얘기입니다. 당시 이동휘가 필요한 자금을 러시아에 요청하자 200만루블이 두 차례에 걸쳐 흘러 들어옵니다. 이 돈이 일명 레닌자금입니다.”

―자료 편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요.

“8년간 많이 모아서 복원 가능한 것들 중에서는 큰 덩어리로 빠진 건 없는데…. 실은 지금 임시정부 자료 수집의 큰 한계가 있긴 합니다. 자료를 진작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한계입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임시정부 환국 요인들이 가져온 서류의 분실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광복 직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들어올 때 가져왔던 가죽가방 13개나 되는 서류들 상당 부분이 6·25 전쟁 와중에 분실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부분에서는 북한에 기대를 좀 걸고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자료 협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타진해 왔지만 아직은 성과가 없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다음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일본이 해외 임시정부 청사를 덮쳐서 서류를 탈취해 간 사건이다. 대략 7000장이 넘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번에 편찬된 자료집 중 별책 제2권의 ‘조선민족운동연감’은 그 7000여장에서 나온 기록들의 제목만 모은 것이라고 하니 원자료의 분량이 대단했을 거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원자료는 못 찾고 있습니다. 이것도 일본에서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일본 방위청 서고에도 들어가 보고 웬만한 문서더미는 다 뒤졌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역사학자의 얼굴에서 진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자료집에는 대략 몇 개국의 외교문서가 실려 있습니까.

“당시 국제 정세나 임시정부가 처한 환경으로 봐서 중국이 자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정보국(OSS) 문서, 프랑스의 낭트보관서에 있는 문서, 러시아와 영국 등의 정보문건도 상당수 있습니다. 모두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고 하셨는데.

“1948년 제정된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하고…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족독립국가를 재건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처음 세워진 게 아니고 재건됐다는 것을 말하는 거죠. 지금의 수정 헌법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이미 1919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임시정부라는 정치체제가 붙은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김 교수의 호흡이 빨라졌다.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 직후 세워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아 29년이 지난 1948년에 재건된 것이란 설명을 하는 지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만든 것이죠. 일제에 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상태였지만 말이죠. 근대국가의 구성 3요소 가운데 주권은 잃었지만 국가와 국민은 엄연히 있었습니다. 국토를 빼앗긴 상태에서 해외에 나가서 국가를 세우고 그것을 운영할 때 목표는 완성된 독립국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을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대신한 것 아니겠습니까.”

김 교수에 따르면 1919년에 이미 지금 쓰고 있는 국호는 물론 대통령이란 국가 수반 명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라는 이름이 모두 지어졌다. 태극기도 완성됐다. “그해 4월11일 나온 첫 헌법 이름이 ‘대한민국임시헌장’입니다. 헌장 제10조가 ‘국토를 회복하면 1년 안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돼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 국회의 시초인 겁니다.”

기자가 이해하기로는 과거 일제가 조선반도를 강점해 식민지사관을 전파할 때 이론적 바탕이 됐던 게 ‘정체성이론’이었다. 근대사회가 정치적으로는 시민사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는 과학적 비판과 인본주의 등을 필요로 하는데, 조선은 그걸 갖고 있지 않다는 게 정체성이론의 요체였다.

하지만 김 교수는 묻는다. “전 지구상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근대국가를 만들어 나간 국가가 대한민국 말고 있습니까.” 그는 “근대성의 내용들이 임시정부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근대성을 독립운동을 통해 구현한 데 조상의 위대함이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국제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은 국가를 어떻게 국가로 인정하느냐고 주장하는 국내 학자들에게도 김 교수는 질문을 던졌다. “식민지국가를 통치하는 건 제국주의국가입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소수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지배하던 세상이었죠. 식민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제국주의가 그 나라의 독립성을 인정해 주겠습니까. 제국주의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미완성이고 불완전했지만 1919년에 국가를 세운 것이고 그걸 독립운동을 통해 완성해 갔던 겁니다. 그게 광복 이후 지금까지 쓰고 있는 우리의 헌법 정신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김 교수는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원년’임을 말해 주는 것이라는 또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 1948년 9월1일자 ‘대한민국 관보 1호’ 문건이다. 거기엔 발간연기를 ‘대한민국 30년’으로 기록했다. 1919년에 세워진 임시정부 대한민국은 국호이자 연호다. 그래서 1948년의 관보 1호 문건에 대한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썼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1919년은 대한민국 원년이고 1948년은 정부 수립의 해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일은 1919년 4월10일, 임시정부 수립일은 첫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된 4월11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연구자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북한이 임시정부를 굉장히 욕하고 있죠. 인민들의 피를 빨아 외교행위만 했다고 마구 짓밟아 버렸어요. 남쪽에서는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임시정부를 끌어들이니까 진보 학자들이 임시정부를 무시하려는 시도가 있었고요. 일부 보수 진영 내에서도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없지 않습니다. 민주공화국을 논하려면 1919년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앞의 역사를 다 잘라 버리는 겁니까.”

―그렇군요. 그럼 임시정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로 요약됩니까.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공화국입니다. 최초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황제가 주인인 나라였지만 독립운동가들이 다시 세워서 국민들에게 돌려줄 때는 민(民)이 주인이 된 국가로 탄생한 겁니다.”

반만년 역사에 처음으로 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체제를 선언한 것이므로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김 교수의 말에 공감이 갔다. “임시정부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쓰여 있어요. 민주와 공화가 구분이 어려운 한 덩어리이긴 한데, 어쨌든 우리 역사에서는 같이 쓰입니다. 제2조에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를 얻어 통치한다’고 돼 있고요. 임시의정원이라고 하는 민주와 공화가 어우러진 시스템을 통해 통치한다, 이런 뜻으로 보면 됩니다.”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는 잘 알겠습니다. 지금 한국은 여전히 이념논쟁 등으로 인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사상적 위상은 어떻습니까.

“임시정부는 츨발할 때부터 좌우 합작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1919년 첫 임정 수반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이동휘 부통령을 세운 게 그렇습니다. 그런 통합을 이뤄낸 건 안창호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도 독립운동사에서 업적이 많은 분이지만 민족적으로는 분열을 만든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안창호나 김구 등은 통합 쪽에 선 이들이죠. 1926년에 안창호가 제창한 ‘유일당운동’이 그 좋은 예입니다. 조국이 일제에서 해방되기 직전까지 사상적 통합운동은 계속됐습니다. 조소앙이 내세운 삼균주의가 1919년 임시헌장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김 교수의 임시정부 역사에 대한 오랜 연구, 근대정치사에 대한 탐구는 곧 현대정치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지금 정치권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분열 위의 집권’ 문화가 ‘통합 위의 통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시정부 시절의 정신에 비춰 지금 한국 정치 현실을 논한다면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통합해 가려고 하는 노력이 없습니다. 전체를 끌어안고 가려고 하는 큰 틀의 인물도, 경륜도, 정책도 없어요. 여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분리를 통한 집권 전략만 있을 뿐입니다. 이승만조차도 하와이에 가서 동포사회를 두 쪽으로 나눴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 겁니까.

“오늘의 정치인들이 여야 할 것 없이 극단으로 끌고가고 있는 게 참으로 잘못된 일이죠. 진보든 보수든 제대로 하려면 건전한 중도파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걸 어렵게 하는 게 한국의 정치문화입니다. 우파는 중도파마저 좌빨(좌익빨갱이)로 몰고, 좌파에서는 수꼴(수구꼴통)이라고 욕을 합니다. 이러니 정치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안창호 같은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의 여야 대권 주자들 중에는 이런 인물이 보이질 않습니다.”

김 교수는 심지어 통합을 주장하던 노무현 정권도 ‘분리 위의 집권’ 정책을 구사했다고 평가했다. 민주화그룹과 독재부역그룹,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진보와 보수, 이렇게 분리하고 그 위에서 집권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과거사를 규명하고 이를 잘 이용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다’는 게 그쪽의 논리였다는 말도 함께 했다. 그런 식으로 전선이 명확해지면 20년 집권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실제로 노무현 정권 내부에서 나왔다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리 위의 집권이 가져온 병폐는 어떤 겁니까.

“국민을 둘로 쪼개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4대강이든 자유무역협정(FTA)이든 광우병이든 다 그렇잖습니까. 그게 뭐가 됐든지 사안이 뭔지를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일단 누가 먼저 제안했다 이런 것만으로 찬성하거나 반대를 하는 거죠. 분리 위의 집권 구도로 가면 국민은 계속 분열합니다. 처음에는 사안을 놓고 반대하지만 나중에는 사람과 집단을 보고 반대하는 식으로요. 분열은 또 다른 분열을 낳는 법입니다. 이 상태에서 남북통일을 한다고요. 안 되죠. 남쪽부터 통일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설혹 집권을 못하더라도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따르고 존경할 수 있다”면서 “임시정부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역사적 과제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