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즘>무용가 금빛나의 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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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작가

무심히 펼쳐든 그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만났다.

“우리말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은 ‘돌아가시다’이다. 이 말에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생에 대한 원형적 사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먼저 떠난 자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배어 있어 말하는 자나 듣는 자의 마음에 언제나 공손하고 부드러운 여운을 남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보다 더 가슴 뭉클하고 아름답게 해석한 표현이 또 있을까!”

인도 고전무용 오디시 무용수 금빛나 씨의 책 ‘달·비·잠’에서 만난 한 구절이다. ‘달비잠’이라니, 무슨 책 이름이 이런가 했던 나는 읽어나가면서야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린 ‘달 이야기’ ‘비 이야기’ ‘잠 이야기’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냥 달, 그냥 비, 그냥 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한 청춘이 걸어온 사유의 기록, 아프기 짝이 없는 영혼의 허물벗기, 나를 찾아 나섰던 궁핍과 풍요가 뒤엉킨 시간들의 명상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책은 밑줄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젖고 있었다.

금빛나. 서강대에서 불문학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 고뇌하면서 종교학과 철학으로 외연을 넓혀간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본 인도영화 속 ‘어떤 춤’에 매료되었다. 그 후, 본격적인 불교 공부를 위해 떠났던 스리랑카에서 그가 매료되었던 ‘어떤 춤’이 인도 고전무용의 하나인 오디시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주저할 것 없이 무용가로서의 변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도로 오디시 무용의 거장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4년이 흐른 2010년, 피땀 어린 수행을 거쳐 무용가로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갖는다. 나를 찾아간 여정이 마침내 오디시라는 춤으로 피어올랐던 것이다.

인도로 찾아가기까지 그녀가 ‘나의 시간’을 찾아 헤맨 나날들, 그리고 인도에서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찾아왔던 자아를 발견하는 영혼의 기록이 바로 그녀의 책 ‘달·비·잠’이다.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경험은 분명 또 다른 나, 좀 더 깊숙한 곳의 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금빛나는 속삭인다. 그리고 그는 다독거리듯 타이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단, 어떤 아픔이든 그것을 마냥 아픔으로만 받아들이지 말 것, 아파하고 있음을 인식할 것. 그 속에 함몰되지 말 것.’

그의 글은 깊은 인문학적 소양에서 우러나는 명징한 서술로 자신의 방황을 그려내는가 하면 때로는 산문시를 느끼게 하는 뛰어난 묘사력으로 마치 새순이 넝쿨을 이루며 감싸고 오르듯 우리의 감성을 간질이며 타고 오른다. 거기에, 차갑도록 영롱한 언어 구사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힌두 사원에는 동물 가죽으로 된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든지, 어떤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느 요일에 채식을 한다든지…. 체험을 통해 힌두인들의 생활을 소상하게 들려주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고전적 의문을 가슴에 품고 길을 찾는 오늘 이 땅의 젊은이에게, 금빛나가 온몸으로 던지는 물음과 맞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적어도 그의 의문과 괴로움과 방황이나 설렘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보다 근원적인 내면의 의문과 맞서 있기 때문이다.

한 젊은이가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기 ‘달·비·잠’을 읽으며, 이제 그런 길을 그리워하거나 부러워할 나이를 넘어선 나는 담담하게 아니 잔잔하게 읽힐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듯 이 말을 건네고 싶었다. 젊은이들아. 저기 금빛나를 보아라! 꿈은, 길은, 희망은 이렇게 찾아가는 것이다. 네 그 음침한 반지하여도 좋고 바람소리 그치지 않는 허전한 옥탑방이어도 좋다. 이념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이제 떨치고 걸어 나오거라. 저 어딘가에 자신의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며 걸어 나가거라. 무엇이 두려우냐. 너희들의 금빛나가 이미 저만큼 가고 있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