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南차관 상환 않고 核에 돈 퍼붓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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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한때 유행했던 신조어 중에 ‘집 거지’란 말이 있다. 영어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직역한 말이다. 무리해서 집을 장만하다 보니 생활이 거지 수준이 돼버린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핵(核) 개발과 김일성 우상화에 돈을 물 쓰듯 쓰는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보면 ‘핵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하다.

북한은 이른바 ‘강성대국 원년’이라며 지난 4월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에 모두 20억4000만 달러(2조2900억 원)를 쏟아부었다. 또한 북한이 1965년부터 현재까지 핵 개발에 사용한 비용을 합산하면 65억8000만 달러(약 7조4354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금액을 식량으로 환산해 과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운반했던 5t 트럭에 가득 싣고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여서 일렬로 경부고속도로(416㎞)에 세워놓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4월의 김일성 우상화 행사를 위해 날려버린 식량은 경부선에 쌀 17줄, 옥수수 31줄을 각각 세울 수 있는 분량이고, 핵 개발에 날아간 식량은 쌀이 56줄, 옥수수가 100줄을 세우고도 남는다.

북한 정권은 핵 개발과 잔칫상 차리기에 혈안이 됐지만,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황해도 일대에서도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최근 보도는 무얼 말하는가. 9분짜리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0분 간의 대동강변 불꽃놀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며 원조를 구걸하는 북한의 모습은 영락없는 ‘핵거지’다.

그런데 핵·미사일 개발과 잔치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북한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오는 7일은 김대중 정부가 2000년에 차관으로 제공한 8800만 달러에 대한 첫 원리 상환금 583만 달러의 상환일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북한에 7억2000만 달러 상당의 쌀과 옥수수 260만t을 1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의 차관으로 제공했다. 향후 20년 동안 북한은 원리금과 이자 1%를 합쳐 총 8억7533억 달러를 한국에 갚아야 한다. 하지만 이 금액은 김일성 100회 생일에 지출한 돈의 40%, 핵 개발에 펑펑 쓴 돈의 13%에 불과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북한에 원리금 상환기일을 이미 통지했다. 그러나 북한이 자발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한국 정부의 지원이 차관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당국 간 회담에 대한 ‘대가’였다며 대가성 지원임을 주장해왔고,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체결된 ‘남북 간 식량차관 제공에 관한 합의서’에는 상환기간과 상환조건에 대한 조항이 명시돼 있고, 남북이 합의한다면 현물 등 다른 방법으로 상환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적 관례에 따라 차관을 당연히 상환해야 한다. 북한에 제공된 차관은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血稅)다. 죽은 김일성의 생일 이벤트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 북한을 이해해줄 한국민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대북 차관 상환 원리금과 관련, 북한에 정식으로 촉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북한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북한이 당장 상환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상환연기각서와 장기상환계획서라도 받아야 한다. 또한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대북 퍼주기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식량지원에 차관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던 과거 정부의 오류를 두번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된다. 북한도 남북대화를 회피하면서 국내 종북(從北)세력들의 반정부 투쟁활동 유도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