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포기하면 우리 삶은 철저히 위축된다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금까지 채택했던 모든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치체제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이상화하고, 변용하고, 왜곡하고 또 놀리고 조종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두말할 것 없이 인류 최고의 업적이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 역학 속에서 민주주의는 비틀거리고 있다. 아랍권 국가의 민주화 바람을 몰고 온 ‘아랍의 봄’을 ‘잔인한 여름’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 시리아 사태다. 피를 자양분으로 하는 민주화 역사는 험난하다. 저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성을 경험하면서 배우게 된 진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우리 삶은 철저하게 위축된다는 사실이라고 역설한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006년 처음으로 민주화 지수를 발표했다. 4년 뒤인 2010년 판의 평가는 더 암울하다. 요약된 내용의 제목은 후퇴하는 민주주의였다. 저자는 2010년 기준으로 완전 민주주의 국가는 26개, 불완전 민주주의 국가는 53개, 혼합 정체는 33개, 권위주의 정권은 55개라는 통계를 인용한다.

EIU는 민주주의 후퇴 요인으로 고달픈 경제 현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강요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이상화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책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테네에서 시작해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을 관통한 뒤 아메리카를 넘어 중국까지 지구촌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민주주의 역사를 살핀 뒤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민주주의란 무엇이라고 섣불리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의 반영으로서 민주주의를 오롯이 보여준다.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사건 중 하나가 퍼트니 논쟁이다. 1647년 10월28일부터 11월9일까지 영국 런던 근교 퍼트니의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수평파는 크롬웰 등 고위장교 집단으로 구성된 그랜디파와의 논쟁에서 역사상 최초로 민족 국가 차원에서 대의 정부를 주장했다.

이로써 민주주의는 현실적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군주제에서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정치체제로 이양하는 도화선이 됐다.

1840년이 되자 미국의 모든 백성 성인 시민은 연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거의 모든 중요한 공직자들이 선거를 통해 배출됐고 국가 권력과 잠재적 다수의 횡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범국가적 제도들이 수립됐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기 때문에 도식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공동체적 창의성의 줄기찬 발로이지만 그런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