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여행상품 때문에 ‘도둑맞은 휴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 패키지 여행 상품에 대한 고객 불만이 많은 가운데 서울시내 한 여행사의 상담 창구에서 21일 한 고객이 해외여행 상품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보내 드렸다가 큰 낭패를 봤습니다.”

전북 전주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조모(여·24) 씨는 M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결혼 30주년을 맞은 부모님의 캐나다 여행을 주선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1인당 279만 원을 내고 지난 5월7일부터 14일까지 ‘캐나다 완전 일주 8일’이라는 여행 상품을 통해 캐나다를 돌아보는 일정이었지만 3일째 되는 날 조 씨의 어머니가 호텔에서 미끄러지면서 큰 부상을 당해 사태가 급변한 것. 조 씨는 “어머니의 부상으로 예정된 여행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도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300만 원 한도의 상해보험이 고작이었다”며 “대형 여행사의 지명도를 믿고 간 고객에 대한 보호가 형편없었다”고 혹평했다.

여행사 측은 조 씨에게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내용은 출발하기 전 모두 성실하게 공지했으며 조 씨 어머니의 부상 이후에도 성실히 조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여행사 패키지를 활용해 태국 푸껫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던 이모(여·43) 씨도 불쾌한 경험을 했다. 현지에서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불친절한 태도로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하면, 쇼핑 관광을 하면서 현지 판매원과 언성을 높여야 했다.

이 씨는 “쇼핑 관광 코스에선 마치 라텍스 공장의 초청으로 여행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며 “쇼핑을 하지 않자 현지 판매원이 무례한 발언을 해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여름휴가철엔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저렴한 여행사의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만큼 여행사의 고객 관리와 서비스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행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이라도 벌여 보고 싶은 것이 피해자들의 심정이지만, 법적 절차를 시작했을 때의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실제로 소송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국내 여행업계에서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하면 영세한 업체가 많아 이들이 무수한 여행 상품을 쏟아 내고 있는 것도 소비자들이 양질의 상품을 고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한 여행사가 현지의 안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여행객들을 보냈다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활용해 이집트로 떠났다가 반정부 시위 때문에 입국을 거절당한 여행객 21명이 여행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여행사에 여행객들이 지불한 여행 비용 전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행 전 여행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여행사 측이 강행했다”며 “입국 거절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이라 책임이 없다”는 여행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내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하나투어, 모두투어, 레드캡투어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영세한 업체들은 모두 적자를 보고 있다”며 “여행사 입장에서도 저가 패키지 상품을 내놓을 때 수익성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선택 관광을 추가하고 있는데 이를 고객들에게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도 “여행사 입장에서도 선택 관광이나 팁에 대한 고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옵션·노팁 상품들을 많이 내놓았다”며 “하지만 그런 상품들은 가격이 기존 상품보다 비싸기 때문에 좀 더 저렴한 패키지로 소비자들의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선택 관광의 경우 일정을 진행하며 여행사가 대행 수수료를 남기는 구조여서 그로 인한 수익으로 전체 여행 상품의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분석한 지난해 해외여행 관련 피해 구제 접수 현황에 따르면 해외여행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고 건수는 2009년 240건에서 2010년 441건으로 2배가량 늘었고, 지난해엔 781건을 기록해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피해의 유형도 가이드 불친절, 환불 거부, 옵션(추가 비용) 요구, 강제 쇼핑 등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원에서는 패키지 여행 상품을 선택할 때 소비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2가지를 제시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여행 상품을 고를 때 저가 위주의 상품으로 고르지 말고, 여행 일정이 예정과 다르게 진행될 때를 대비해 여행자 이행보증보험이 상품에 포함돼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며 “여행을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일정이 변경될 경우 서면 동의 절차가 있으니 꼭 서면을 통해 증거를 남기고 귀국 후 소비자원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신고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