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평등한 지상낙원’ 왜 실패로 끝났나

코뮤니스트 /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1989~1991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환각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느라 스스로를 꼬집어야 했다. 세계 정치에서 뭔가 수상쩍은 일이 발생했다. 별안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한 것이다. 그때까지 공산주의는 가장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던 근대국가 형태 중 하나였다.”

그렇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는 유럽에서 제거됐다. 1991년엔 소련에서 같은 일이 발생했다.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들은 역사 이래 어디에나 있었고, 19세기에 이르러 그 꿈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毛澤東), 카스트로, 호찌민, 티토,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나라의 정치·사상적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를 자칭했다.

게다가 공산주의는 마르크스 이전부터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사회 변혁의 이상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대안 중 공산주의만큼 유력한 이념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등한 지상 낙원을 제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공산주의는 소련의 몰락과 함께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했던 이념이 왜 추락했을까. 인간 해방의 꿈으로 뭉쳤던 혁명의 동지들은 왜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게 됐을까. 이 책 ‘코뮤니스트’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산주의 태동에서부터 성공과 몰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촘촘하게 조망한다. 러시아 근현대사 권위자인 저자는 공산주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실패했는지 그 허상과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책에 따르면 너무나 다양한 공산주의가 존재해 왔다. 똑같은 공산 국가라고 해도 시끌벅적한 바와 레스토랑이 있는 쿠바와 3대 세습이 이뤄진 북한이 똑같이 운영된다고 어느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러나 공산주의의 특성은 공산주의가 길든 짧든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것이라면 근본적으로 유사했다고 강조한다. 공산주의 체제들은 경쟁 정당을 없애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종교 문화 시민사회를 공격했다. 사법과 언론의 자율성을 철폐했고 권력을 중앙 집중화했다. 반체제 인사들은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했다. 이뿐이 아니다. 교리의 무오류성을 주장했고 자기들이 인간사의 무결점 과학자라고 과시했다. 저자는 이처럼 공산주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런 공통점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일반화해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비판한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 작가, 예술가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프랑스 유학으로 자본주의를 접했던 키 작고 소탈한 성격의 덩샤오핑(鄧小平)과 말년에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던 마오쩌둥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사회주의에 공감했던 소설가 조지 오웰과 레닌주의를 신뢰했던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이 공산주의를 비판하게 된 과정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각자 스페인 내전과 러시아 내전에서 보고 겪은 뒤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적 모습을 목격했던 인물들이다.

북한을 언급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모스크바(러시아)와 베이징(중국)이 군사 개입을 단행할 것이라는 점을 워싱턴(미국)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국가로 살아남았다”고 분석했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남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저자는 마르크스 이래 지금까지 존재해 온 공산주의 운동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을 포착하려 애썼으며, 의도한 바를 확실히 성공적으로 이뤘다”며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은, 많은 경우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거나 사실을 침소봉대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을 박멸해야 할 ‘악의 세력‘으로 그리는 데만 골몰했던 다른 학자들의 공허한 외침보다 학문적으로 훨씬 치밀하다”고 평가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