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F-35의 ‘오만’

한강우/사회부 차장

지난 10일 세계 3대 에어쇼의 하나인 영국 판보로 에어쇼 현장을 찾았다. 한국의 차기 전투기(F-X) 3차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유로파이터와 F-15SE, 그리고 F-35 전투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50㎞ 가량 떨어진 판보로에서 열린 이번 에어쇼 행사장에는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사용하던 스핏파이어 전투기에서부터 미국의 F-15E, F-18E/F, F-16C/D 등 주력 전투기, UH-72A 등 각종 헬기, 무인기까지 모두 87대가 비치됐다. 하지만 F-X 3차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유로파이터와 F-15, 그리고 F-35를 한자리에서 모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고스란히 무너졌다. 우리 공군의 F-X 3차 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한 3개 기종 가운데 2개 기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스페인 모론 공군기지로부터 직접 공수해온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최첨단 전투기 유로파이터만 전시해 놓았을 뿐 보잉은 F-15SE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록히드마틴의 F-35는 실물이 아닌 모형만 전시해 놓았다.

다행인 것은 이번 판보로 에어쇼에 참여한 세계 항공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F-X 3차 사업도 관심거리의 하나였다는 점이다. 영국 항공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FG)의 그레그 월드론 기자는 한국의 F-X 3차 사업에 대해 “매우 타이트한 경쟁이 될 것이고, 한국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고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세계 항공 관계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우리나라의 F-X 3차 사업, 특히 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빠르다.

F-X 3차 사업과 관련, 방위사업청의 시험평가는 작전운용 성능을 포함해 군운용적합성 등 500여 항목을 평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F-X 3차 사업의 시험평가가 그 어느 나라의 전투기 도입사업 시험 평가 못지 않게 충실한 평가 항목들이 모두 망라돼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오는 8월초부터 차기 전투기 3개 기종에 대한 현지 평가가 2개 팀으로 나뉘어 실시되며 ‘시험평가팀’은 기종별로 4주간, ‘군운용적합성팀’은 기종별로 1주일 정도 실물 평가를 하게 된다. 평가 항목 500여 개 가운데 ‘3개 후보 기종 모두 개발 중’인 것은 ‘시뮬레이터’로 하게 되며, 나머지 난이도가 높은 항목은 ‘시범비행’과 ‘비행테스트’로 이뤄진다. 시범비행 평가는 현지 공군이 비행하고 우리 평가단이 지상에서 원격계측기를 통해 지켜보고 자료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진행되며, ‘비행테스트’는 우리 공군이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 성능시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의 F-35는 유로파이터, F-15SE와 달리 이러한 시험평가팀의 시범비행과 테스트를 거부하고 있으며, 군운용적합성 평가팀의 비행테스트 평가에는 아직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500여 평가 항목 가운데 절반 이상의 평가를 거부하면서 전투기 겉모습만 보고 구매하라는 태도다.

하지만 전투기의 작전 성능들에 관련된 이런 핵심적인 세세한 항목들을 시뮬레이터로만 평가하고 시범비행도 없이 구매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사청도 “록히드마틴이 한국 정부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면 F-35에 대한 시험평가를 거부할 수 있으며 탈락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8월초 F-15SE부터 시작되는 3개 기종의 평가는 8월 말 유로파이터에 이어 9월 말 F-35에 대한 시험평가가 예정돼 있다. 그때까지 F-35가 비행테스트는 시뮬레이터 평가로 대체하고, 시범비행은 아예 거부한다면 방사청은 공언한 대로 F-35를 탈락시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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