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소금 과거엔 ‘권력’ 이었다

현대인들에게 소금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이다.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소금이 귀했던 고대의 제염업은 오늘날 정보기술(IT) 산업보다 훨씬 유망한 업종이었다. 샐러리(salary)의 어원은 소금(salt)으로, 로마 병사는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소금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평안 감사보다 소금장수’ ‘소금장수 사위 보았다’는 속담 등을 통해서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소금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역사민속학자인 저자는 10년 연구를 집약한 책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어진 소금의 위상을 되짚어 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톺아본다.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와 현대까지 ‘소금의 역사문화사’를 아우른다. 책의 제목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은 소금의 알갱이는 작지만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책에 따르면 소금은 시대별로 수위는 달리했지만 국가 재정의 확충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고려말 충선왕(1275∼1325) 때 시행된 소금 전매법인 각염법이 대표적인 사례. 고려 초 도염원이라는 관청을 설치해 소금의 제조·배급·판매를 국가가 총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염법이 크게 문란해졌다. 귀족과 사원이 소금가마를 차지하면서 국가의 염세가 크게 줄어들어던 것. 골머리를 앓던 충선왕은 모든 소금가마를 국고로 귀속시키고 정해진 가격에 일률적으로 판매하는 각염법을 실시했다. 소금 전매를 시행한 덕에 한 해에 포 4만 필, 소금으로 치면 8만 석이 국고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 초부터 백성들에겐 큰 고통을 안겨줬다. 국가가 선불로 돈을 받아놓고 소금을 제때 주지 않았던 탓이다.

“소금을 얻지 못하는 백성들의 원망이 밤하늘로 퍼져 갔다. 그럴수록 고려말 이성계가 주도하는 역성혁명의 새벽도 밝아져 갔다.”

고려의 유풍이 강했던 조선 전기에도 ‘도로 소금 전매제’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소금을 전매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세종 때 의창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탄생한 ‘의염색(義鹽色)’이란 특별 관청이 들어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이런 폐단을 없애려고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대표 저작 중의 하나인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등에 소금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면서 공정하게 세금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정약용은 가렴주구가 심한 지방 곳곳의 수령과 하급관리들에게 ‘시랑(豺狼)’이란 시를 통해 “승냥이야 이리야, 또 누굴 죽이려느냐”고 격분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주장한 ‘평미레 개혁론’이다. 평미레는 말이나 되에 곡식을 넣고 그 위를 평평하게 밀어 고르게 하는 데 사용하는 방망이 모양의 도구다. 평미레로 곡식을 반듯하게 미는 것처럼 지방마다 들쭉날쭉한 소금세 제도를 통일하고 징수량을 공평하게 조절하자는 게 정약용의 ‘평미레 개혁론’인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의 이런 주장은 조선 후기 내내 끝내 실현되지 못하고 개항과 일제의 침략을 맞게 된다. 일제는 북한 지역에 천일염전을 많이 건설한 탓에 해방 이후의 남한은 혹독한 ‘소금 빈곤’을 겪게 된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고자 대대적인 천일염 증설에 나섰지만 곧이어 ‘소금 과잉’의 후폭풍을 맞게 된다.

책은 이밖에 소금장수 설화, 자염의 생산 비법, 소금의 주술적 상징성, 생태주의와 천일염 등 소금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의 변모를 꼼꼼하게 살핀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