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만 칠하던 화가, 무지개를 덧씌우다

영국 런던서 2006년쯤 온통 시뻘건 ‘붉은 산수’를 그렸다.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 흰색으로 지워내며 우리의 산과 바다며 집과 정자를 담았다. 백두산 천지부터 남해의 거북선모양 등대 그리고 한라산까지. 화면 가득 풍경이 밀도 있게 들어찬 작품은 이세현 씨의 ‘비트윈 레드(Between Red)’시리즈다.

‘비트윈 레드’시리즈는 영국, 이탈리아, 미국 전시를 통해 해외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국내에서도 아트페어 단체전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09년 귀국 후 경기 파주에서 작업 중인 그는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와 판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세현 씨의 국내 첫 개인전이 29일부터 10월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의 본·구관에서 열린다. ‘플라스틱 가든’이란 주제로, 본관에선 소문난 ‘붉은 산수’ 가, 그리고 신관에는 새로 시작한 ‘레인보우’시리즈와 조각도 선보인다.

붉은 색 그림에선 섬세한 붓질로 정교한 작업을 시도했던 그는 신작에선 현란한 원색이 폭죽처럼 퍼지며 붓질이 굵고 거칠어졌으며 사람도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 ‘비트윈 레드’는 유학시절 낯선 이국에서 떠올리던 고향 거제도를 비롯해 군복무시절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보이는 붉은 이미지가 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군시절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야간보초를 서며 투시경을 통해 마주한 비현실적이면서 묘하게 아름답던 붉은 나무와 숲을 화면에 펼친 것.

“붉은 색은 매혹적이면서 자세히 보면 슬퍼지고 무서워지기도 해요.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색이지요. 그러나 빨강만으로 표현이 제한적이지요.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이도 들고 바뀌고, 작품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작가는 붉은 색을 금기시하는‘레드 콤플렉스’를 넘어 붉은 풍경 속에 분단국가의 현실 및 사라지고 있는 옛 풍경에 대한 감회를 담아냈다.

‘레인보우’시리즈에선 빨강 외에 보색인 녹색을 비롯해 노랑, 파랑, 검정색 등을 사용한다. 6·25전쟁 이후 경제개발,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을 묘사했다. 화분에 심은 분재처럼 구성한 그림에는 전쟁, 피란민 등 근대사의 주요 장면이 담겨 있다.

신작에는 작가가 파주 작업실 부근에서 자주 접하는 붉은 고무대야 속 식물처럼 현란한 이미지가 꽃이나 줄기처럼 이어진다.

홍익대 시절에는 서양화, 영국 런던 첼시예술대학원에선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멘트조각, 녹슨 철사 등을 소재로 한 조각도 선보인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