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초대석>“리스크 관리가 곧 국가경쟁력… 損保는 경제성장 안전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우 손해보험협회 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손보협회 집무실에서 세계 보험시장 10위권 규모로 자리매김한 국내 손보산업의 지속성장과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올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과 ‘덴빈’, 앞서 집중호우 등 재해로 피해를 본 국내 차량은 1만5000여 대로 추정된다. 보험업계의 추정손해액은 500억 원에 육박한다. 이런 와중에 치료는 뒷전이고 잠만 자는 ‘모텔형 병원’ 적발에서 드러나듯 장기간의 경기침체 속에 억대의 보험금을 노린 한층 교묘화·지능화된 보험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40~50대라면 자연스럽게 ‘국민연금은 부족하고, 사적연금으로 버팀목을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라는 고민에 빠져 들게 한다. 지난 7월에는 이란산 원유수송 유조선에 대해 영국의 재보험(再保險)사들이 인수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곧 원유수급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원유수급 차질로 이어졌다.

지난 6일 문재우(59) 손해보험협회 회장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이런 여러 ‘화두’가 복잡하게 떠오른 것은 보험업계를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보험의 역할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자각’이 새삼 밀려 왔다. 생명보험과 함께 국내 양대 보험산업의 축인 손보업계 수장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손보협회 집무실에서 만난 문 회장은 특유의 환한 웃음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손보산업의 위상과 비전에 대해 상당시간을 할애했다. 건넨 명함을 보니 ‘안전한 사회, 행복한 미래’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2년 전인 2010년 8월 말에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정한 협회 캐치프레이즈다.

“케이팝(K-POP)처럼 한국을 찾는 문화상품 브랜드를 조성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이겠죠. 안전하지 않으면 누가 한국을 찾겠습니까. 관광, 수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국가·정부가 이 기능을 100% 해줄 수는 없다고 봐요. 국방이나 치안을 뺀 나머지 리스크는 민영부문에서 담보해 줘야 할 것으로 봅니다. 보험이 성장할 측면이 무궁무진한 셈이지요. 복지체계를 갖춘 나라가 선진국이잖아요. 안전은 국민의 복리증진, 국가의 지속성장,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경쟁력 문제와도 직결된 사안이에요.”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결국 미래 성장동력 훼손으로도 이어지는 만큼 안전판 확보가 절실하다는 뜻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안전사고 사망자 수는 60.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견줘 매우 높은 실정이다.

“올해 1분기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193명으로,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1%나 늘었어요.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는 OECD 국가 31개국 중 29위에 달합니다. 그동안 정부부처, 국회, 시민단체 등과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펼쳐 2008년에 5870명에서 지난해 5227명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약 90%는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과속, 차간거리 미준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같은 소위 인적과실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운전자의 의식을 전환하고 교통안전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인식의 개선과 함께 손보협회는 제도적 시스템 장치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 ‘전좌석 안전띠 매기’ ‘운전중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 금지’ ‘음주운전 근절’ 등이 그것. 지금도 운전중 DMB 시청 처벌기준 신설, 혈중알코올농도 단속 기준 0.05%에서 0.03%로 강화, 위험운전치사상죄의 적용범위를 음주운전에서 과속·무면허운전까지 포함하는 등의 교통안전관련법 개정 필요성을 관계기관에 강력히 요청한 상태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에는 안전이 곧 성장과 직결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 아래 의식 개혁, 예방시스템 구축과 피해구제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그 기능의 상당부분을 리스크 관리 전문가인 손보사의 역량이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이 대목에서 생각난 듯 갑자기 자리를 뜨더니 책상에서 보던 자료 하나를 들고 왔다. ‘손해보험의 새로운 10년의 변화와 도약’ 브로슈어였다. 역시 취임 후에 역점을 두고 손보산업의 향후 10년의 성장 가능성과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얻어야 할지 격론한 끝에 얻은 산물이라고 했다.

“손보가 지난해말 기준 자산 130조 원, 회사수 31개, 임직원 3만2000여 명, 모집조직원 17만 명 규모로 세계보험시장 10위권에 속하는 등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장을 주도해온 장기 보장성보험이 2009년 보장제한 이후 침체에 빠지고 손해율도 악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자동차보험의 만성적인 영업적자, 일반보험의 수익성 악화까지 ‘지뢰밭’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경쟁 속에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키워드가 됐습니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혁신할 마인드로 재무장해야 할 시기지요.”

앞으로 저출산·고령화, 재해 증가에 따른 리스크 대비 등 다양한 트렌드와 부가서비스를 결합한 상품을 개발하고 노후의료비보장보험 등 신개념 상품을 내놓겠다는 복안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손보업계는 이와 관련해 노후소득보전을 위한 정책상품인 연금저축 소득공제금액이 선진국과 견줘 낮은 수준인 점을 감안해 소득공제 한도 상향조정을 통한 활성화를 희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이 금액이 7만8500달러, 미국은 1만6500달러이나 우리나라는 3520달러(약 400만 원) 수준이다.

손해보험하면 일반 국민이 가장 체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동차보험이다. 손보업계는 지난 4월 자율적으로 보험료를 2.5% 인하했다. 한 해 보험료 부담 절감효과가 3200억 원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자동차보험의 만성적 적자구조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등 잘못된 관행의 답습 때문에 회계연도(FY) 2010년에 88.0%로 치솟은 손해율이 FY 2011년에는 자기부담금 정률제, 사전견적제도 활성화 등에 힘입어 74.3%로 돌아섰다. 그러나 여전히 적정손해율을 웃돌고 있다고 했다. 보험료 인하는 문 회장의 표현대로 “새는 보험료를 줄여서 손해율을 개선한 결과”라고.

그렇다면 추가적인 보험료 인하는 가능할까. 업계 사정도 녹록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FY 2012년 하반기 자동차보험은 4월 인하 및 앞서 지난해 12월의 마일리지보험 등 할인형 상품의 할인효과 등으로 수입보험료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요. 게다가 7월에는 도장료가 약 573억 원 인상됐고 이달에는 일용근로자 임금이 약 209억 원가량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자동차보험 원가 인상요인은 손해율 상승요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풍 등에 따른 차량 피해도 있고요. 손해율 상승이 예측되는 시점에 보험료 인하여부를 검토해야 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위기가 가속화하면서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 적발실적은 매년 증가추세다. 2010년 기준으로 민영보험부문의 보험사기 추정규모는 한 해 지급보험금 규모인 27조4000억 원의 12.4%인 3조4000억 원으로 추정될 정도다. 1가구당 20만 원, 국민 1인당 7만 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문 회장은 이 시점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보험료 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반인륜적 흉악범죄까지 초래할 수 있는 비도덕적 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면서 “독일 등의 선진화된 법제를 참조해 강력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에 보험범죄의 특성상 사기죄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점을 감안해 형법상 보험사기죄 신설과 보험사기 예비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마련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해양경찰청 등과 수사 공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도 추진하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금융산업은 부쩍 신뢰도 문제에 봉착해 있다. 금융의 기본이 믿음이란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손보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문 회장은 이에 대해 “금융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규모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잘못한 것은 질책하되 사기도 고려해 긍지를 갖도록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큰 죄를 짓는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모집조직의 그릇된 행동으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어긋난 점은 반성할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일선 설계사에 대한 인식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단순히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인이 아니라 안전과 미래, 공익을 판매하는 사명감 아래 자긍심을 지닐 수 있도록 명예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설계사는 보험산업부대의 보병(步兵)으로, 최후의 고지를 넘는 존재’이다. 설계사가 잘 되어야 완전판매가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그가 지난해 최우수설계사 202명을 뽑아 ‘블루리본(Blue Ribbon)’을 수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설계사 역량을 평가하고 격려해 주고 싶다고 했다.

과장광고의 경우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인쇄물 광고는 사전 심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방송광고도 사후심의와 소비자사전테스트 제도 등을 도입해 시행 중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6월에는 손보 사장단 자정결의를 통해 사회공헌활동 강화, 보험상품 투명성 제고 추진, 영업문화 선진화 등을 추진 결의해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2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 회장은 손보산업이 단순히 국내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대형화와 함께 글로벌화를 달성해야만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3월 기준으로 보험업계 종사자 수가 손보와 생보를 합쳐 34만 명에 달합니다. 은행, 증권 등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탁월하지요. 세계 10위 손보시장인데도 저평가된 것은 총자산 등 내실 측면에서 선진 보험사와 견줘 비교열위에 처해 있기 때문인데, 일부 보험사에서 푸념하듯 얘기하지만 ‘손보가 정부의 ‘애정결핍증’에 걸려 있다’는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가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만큼 규제완화 등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이 뒤따라야 해요. ‘글로벌 플레이어’로 육성해 주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손보업계도 해외시장 진출에 역량을 기울이고 국제협력 업무를 더욱 강화하겠다”며 “사회안전망으로써 손보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제도개선 추진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이민종 경제산업부 차장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