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재개발 매몰비 國庫지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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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주/이화여대 사회과학대 교수·행정학

국토해양부와 서울시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뉴타운 출구전략 등의 정책 변화와 조합원 간의 이견 등으로 중단된 도시정비사업장이 전국적으로 573곳이나 된다. 서울시의 경우, 운영중인 추진위원회는 260개이며 추진위원회의 사용 비용은 997억 원에 이른다. 1곳당 평균 약 4억 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관련 업계에서는 조합설립 후 포기하는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매몰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불되거나 투자돼 회수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비용을 의미한다. 재개발사업과 관련된 매몰비용은 조합이나 추진위원회가 재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시공사로부터 빌려 쓴 돈이 대부분이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조합이 설립된 경우에는 조합설립 인가 시 공사비 등 각종 용역비용이 조합당 수십억 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일부 대규모 뉴타운의 경우 100억 원대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추진위원회가 해산된 경우 법정비용 내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줄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매몰비용이 더 큰 조합 해산에 따른 비용의 보조는 제외됐다. 중도에 사업이 중단된 경우 그 1차적인 책임은 조합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조합원들이 돈을 낼 능력도, 의사도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매몰비용 요청을 지원했지만 국토해양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민 세금을 사익(私益)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된 조합 지원에 쓰는 것은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뉴타운의 매몰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몰비용을 국가가 최대 70%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이 3개나 발의된 상태다. 발의된 법안을 보면 매몰비용의 60% 이상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게 주내용이다.

매몰비용은 1차적으로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자신의 책임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1차적으로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게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추진했으며 사업 추진의 결과 이득이 발생한다면 대부분 조합원들이 취하게 되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우 그 책임도 조합원들이 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재개발사업이 도시정비사업이라는 관점에서 추진된다면 이는 공공성이 있는 사업이 되므로 매몰비용의 공공부담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문제 발생의 원인이 정책의 변화에 있다고 본다면 사업 주체와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뉴타운의 경우 서울시가 사업의 인허가권자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조합의 매몰비용 지원을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현재 발생한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중앙정부의 지원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중앙정부의 지원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중앙정부가 지원을 하게 되면 향후 지자체가 추진한 사업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중앙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경우 지자체는 자신의 책임으로 자신의 역량과 재정 규모와는 무관하게 사업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중앙정부가 해결해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자체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막대한 손실은 전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