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소설 ‘BANK’>(221) 제4부 하늘 아래 으뜸 인간 : 제13장 단절의 어려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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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종은 이틀을 더 개성에 머무르고 인천으로 내려갔다.

철호는 지점으로도 집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사전엔 결근은 물론 지각이나 조퇴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조명자는 제 탓이라며 이불을 싸고 누웠다. 억지로 밥을 먹여도 전부 토한 뒤 눈물을 쏟았다. 조명종은 개성을 떠나기 전 여동생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명자야! 눈물 바람 그만해. 오빠 말 잘 듣고 그대로 따라줘. 이 얘긴 무척 중요한 거다. 잘못하면 넌 영원히 철호 색시가 못 돼.”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이들이 와서 장철호가 어디 있느냐고 따질지도 몰라. 그때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한다. 혹시 최인향에 관해 묻더라도,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는 식으로 답해. 넌 이틀 전 밤에 대한천일은행 개성지점에 간 적이 없는 거야. 알겠어?”

“하지만 철호 오빨 만나러 갔던 걸…….”

조명종이 무섭게 두 눈을 노렸다. 지능이 떨어지는 여동생을 늘 따듯하게 감싸던 그였다.

“안 갔다니까! 갔다고 하면 철호가 다신 널 보지 않으려 할 거야. 그래도 좋아?”

“싫어. 명자는 철호 오빠 볼 거야. 철호 오빠 색시 될래.”

울음보가 다시 터지기 직전이었다. 조명종이 성난 눈길을 거두고 달랬다.

“그래. 꼭 철호랑 결혼하도록 이 오빠가 만들게. 그러니 조용히 집에만 있어. 철호를 찾는답시고 문밖을 돌아다니지 말고. 철호는 반드시 와. 알겠지?”

송도상회로 돌아온 조명종도 바깥출입을 삼가고 가게에만 머물렀다. 적어도 하루에 한두 번은 조계지를 거닐며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외국 상인들이 진열해 놓은 물품 구경을 즐기던 그였다. 송도상회 운영은 최진만에게 맡긴 지 오래였다. 인천 거리를 활보하던 그가 가겟방에 하루 종일 누워 빈둥거리자, 주임인 최진만부터 점원까지 불편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틀이 더 지난 뒤 최진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조명종이 답했다.

“아니! 없어.”

“그럼 왜 즐기던 산책을 끊으셨습니까? 혹시 저나 점원들이 잘못한 일 있으면 따끔하게 꾸짖어주십시오.”

“주임이나 점원들 때문이 아니래도 그러네. 내가 좀 쉬고 싶어서 그래.”

“쉬시려면 숙소에 가셔서…….”

“큰 병이라도 든 줄 아는가? 내게 신경 쓰지 말고 평소대로 하게.”

“여동생 혼인 준비도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곧 한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만…….”

철호는 진태와 인향의 결혼식이 끝나고 열흘 뒤 명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했다. 인천이나 한양에는 이 결혼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어느새 눈치 빠른 최진만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딱 잡아뗐다.

“헛소문이야. 반 년 정도는 걸리겠지. 곧 결혼할 작정이라면 벌써 인천 객주들에게 초청장을 돌렸을 걸세. 철호가 인천에서 보낸 세월이 얼마나 길고, 또 사귄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습니까? 당장은 아니군요. 알겠습니다.”

조명종이 바깥출입을 삼간 이유는 혁필과 마주칠 것을 염려해서였다. 개성지점을 향해 빗길을 달려가던 북두칠성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철호가 돌아올 때까지 가겟방에서 넋 놓고 기다릴 순 없었다. 인천에 사는 사람 중에서 철호와 명자의 결혼식에 반드시 참석시킬 단 한 명의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협률사에 몰래 서찰을 보내곤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다.

사흘째 이른 아침, 답동 성당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왔다.

“오늘 밤 자정에 기도실로 오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