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골프 이야기>업무상 라운드땐 편하게… ‘백돌이 골퍼’ - 친구와 라운드땐 독하게… ‘짠돌이 8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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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57·사진) ㈜남영비비안 대표이사는 ‘긍정의 마인드’ 덕에 11년째 사장 직함만 갖고 다닌다. 그는 골프 배울 기회는 많았지만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일하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니 골프 배울 시간도 없었고 별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8년 골프를 배웠다. 영업본부장(상무급)이 되고 난 뒤 ‘마지못해’ 배웠다고 한다. 올해 15년째. 사실 골프 칠 기회는 많았지만 선배들이 “골프는 마약”이라며 “한번 배우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터였다.

그의 골프파트너는 자신보다 연배가 위인 경우가 많아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업무상 골프를 시작한 그는 연습장에서 1시간 정도씩 8번만 레슨을 받고 필드에 나갔다. 1998년 봄 경기 여주군 클럽700골프장(현 블루헤런) 첫 라운드에서 티샷부터 대부분의 샷을 7번 아이언으로만 쳤다. 그런데도 샷이 전혀 맞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그는 6개월 동안 골프채를 멀리했다. 그러나 ‘총괄 전무’로 승진한 뒤 대표이사가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바람에 ‘회사 대표선수’로 골프장에 나가야 했다. 골프채를 다시 잡고 연습장도 자주 들락거렸다. 그는 업무상 골프를 치면서 비거리나 스코어 등 골프의 모든 면에서 ‘우월적 지위’를 포기했다. ‘접대 고스톱’도 실력이 있어야 적당히 잃어주듯,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잘 치고 싶었지만 대인관계에 역점을 둔 전형적인 ‘접대골프’였다.

그는 “이젠 받는 입장보다는 주는 입장의 골프가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연습스윙 한번 하지 않는다. 급한 성격 탓도 있지만 골프장에서만큼은 신중함을 버린 지 오래다. 어드레스 자세에서 에이밍(aiming)이 잘못됐음을 알고도 그대로 치는 편이다. 그래서 아웃오브바운즈(OB)도 자주 나오는 편이고 미스 샷도 많다. 지금까지 자신처럼 빨리 스윙을 마치는 골퍼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와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은 그를 ‘100돌이’로만 안다.

그러나 친구들과 모임에서는 못 쳐도 80대 스코어를 유지하는 ‘짠돌이 골퍼’다. 친구들과는 악착같이 골프를 친다. 2008년 경기 이천시의 렉스필드컨트리클럽에서 가진 선배들과 라운드에서 79타를 쳐 첫 싱글을 했고, 지난해 경기 가평군의 가평베네스트골프클럽에서 열린 신세계백화점 협력업체 골프모임에서 77타를 쳐 200명 중 메달리스트를 했을 정도다.

3개월 전 생애 첫 홀인원의 행운을 안았다. 지난 6월 경기 여주군 해슬리 나인브릿지 PGA코스 5번홀(파3·125m)에서였다. 이날 따라 공이 잘 맞질 않던 그는 9번 아이언을 잡았다. 일행 3명이 모두 그린에 올린 뒤 ‘말구(末球)’를 친 그는 “홀인원이라도 해야겠네”라고 무심코 말했다. 그린 앞 벙커가 마음에 걸려 8번 아이언을 택하려 하자 캐디가 “회원님, 편하게 9번 아이언을 잡으시죠”라고 조언했다. 치는 순간 공이 맞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핀 옆에 떨어진 공은 라인을 타고 왼쪽으로 휘더니 그림처럼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100m가 넘는 거리였지만 ‘땡그랑!’ 소리가 티잉 그라운드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동반자나 앞뒤 팀에서조차 홀인원 광경은 처음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반자 3명 중 2명이 홀인원 경험이 있었다. 가족들의 건강이 안 좋았고, 회사에도 어려운 일이 잇따랐던 때였기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홀인원의 전조였을까. 2주 전 같은 홀에서 티샷이 홀을 스치며 20㎝ 벗어난 적이 있다. 지난해엔 강원 춘천시의 라데나골프장에서 홀인원인 줄 알고 그린에 올라갔더니 공이 깃대 바로 뒤에 숨어 있어 아쉬워했었다.

그는 홀인원 후 골프공 대신 모자를 만들어 돌렸다. 모자챙 안에 ‘홀인원 기념 김진형’을 적어 넣어 모자를 쓰고 벗을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처음에는 300개를 만들었지만 골프장 홀인원 게시판에 이름이 오르자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는 통에 100개를 추가 주문했고, 지금도 차 트렁크에 모자를 갖고 다닌다. 전반 내내 헤매던 그는 홀인원하면서 나머지 홀에서 모두 파를 기록해 86타를 쳤다.

제주 서귀포시 사이프러스골프앤리조트(36홀) 대표를 겸직하고 있는 그는 종종 이곳을 찾는다. 남들이 골프장 양잔디를 떼어내는 모습이 안타까워 스윙을 쓸어치는 타법으로 치면서 골프가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15년 동안 골프를 쳤지만 라운드 횟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공식 비즈니스행사 외에 주중에는 가능하면 나가지 않는 편이다. 대신 토요일엔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어도 일단 골프장에 나가서 판단한다. 그래서 토요일 스케줄은 3개월치가 꽉 차 있다. 1978년 입사한 그는 영업사원 시절 가방에 여성 속옷을 넣고 다니다 오해도 많이 샀고 민망한 때도 많았다. 다른 회사로 전업하려고도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정이 들어 34년째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골프로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지만 골프 때문에 멀어진 사람도 있다”는 그는 “골프란 자기만의 기분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