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미국의 對北 패러다임 大전환

이미숙/국제부장

북한과 더불어 아시아의 은둔국으로 꼽히던 미얀마의 변화가 눈부시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군출신 인사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안팎의 의구심을 씻어내면서 개혁을 추진중이고 민주화 영웅인 아웅산 수치 여사도 미얀마 개방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급속한 변화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얀마는 개방을 혐오하는 국수주의 군부세력이 지배하던 폐쇄적 나라였다. 없는 돈에 멀쩡한 수도 양곤을 두고 내륙의 밀림지대 네피도로 수도를 옮긴 것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는 대외공포증 때문이었다.

그러던 미얀마가 개혁으로 올인하게 된 원동력이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최근 워싱턴 방문때 그 단초를 풀었다. 전미민주주의기금(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본부에서 만난 칼 거시먼(68) 회장은 “미얀마 지원사업을 20년 전부터 해왔는데 요즘 들어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NED는 1993년 창설 직후부터 미얀마 민주화 세력을 지원해 왔는데 이 같은 지원은 미얀마 시민사회를 변화시키고, 군부측에도 생존을 위해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얀마 지원을 시작할 때 군부독재가 워낙 강고해 태국과 인도를 통해 우회적으로 민주인사들과 접촉했고, 북한사업 때도 초기엔 접촉선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이젠 낙관적”이라면서 “미얀마 다음은 북한”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15년 전 대북사업을 시작하던 때엔 북한 민주화라는 말조차 낯설었지만 요즘엔 북한 민주화 단체도 많고 한국 거주 탈북자도 2만 명이 넘어 활동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민권운동에 투신해온 거시먼 회장은 미 의회 결의로 NED가 창설된 후부터 이 단체를 이끌어온 글로벌 민주화운동의 대부다. 북한 민주화운동에 기여해온 공로로 지난 2월 우리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기도 했다.

물론 미얀마와 북한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미얀마의 군부집단 지배는 북한의 패밀리 독재보다 숨쉴 여지가 있는 체제였고 주체사상 같은 논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얀마엔 아웅산 수치라는 민주화 상징이 있지만 북한엔 없다. 그렇지만 북한에는 미얀마가 결코 꿈꿀 수 없는 대안 체제가 있다. 바로 한국이 북한인들에겐 하나의 미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체제의 고삐를 다잡고 있지만 거시먼 회장의 예측대로라면 북한은 이미 변화의 8분능선을 넘은 상태다.

실제 워싱턴에서 만난 대북전문가들의 관심은 대북협상이 아니라 북한체제 변화쪽으로 경사돼 있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싱크탱크의 움직임에 밝은 한 인사는 “요즘엔 어느 누구도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류는 미국 대통령 선거 후 본격화할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 주류의 대북 접근법이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회담의 모멘텀을 잃지 않기 위해 17일 도쿄에서 회동했지만 미국의 대북 전략은 이미 핵협상에서 체제변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포용이냐 압박이냐는 식의 낡은 패러다임을 고수할 경우 우리의 대북 이니셔티브는 사라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차기 정권을 누가 장악하든간에 곧 도래할 북한의 변화에 대한 그랜드 구상 없이는 정권의 안위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평화도 확보될 수 없다는 점을 워싱턴의 기류는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