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宅닮은 유학자 8旬노인의 ‘낡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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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 권산 지음 / 반비

경북 봉화. 여기 대대적인 보수를 앞두고 있는 300년 묵은 쇠락한 고택이 한 채 있다. 고택에는 그 낡은 집만큼 오래 묵은 마지막 유학자 팔순 노인이 있다. 책은 ‘함께 늙어가며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집과 노인의 쓸쓸하면서도 뭉클한 사진 기록이다. 노인 홀로 기거하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집은 쇠락할 대로 쇠락했고, 평생을 명징한 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으되 ‘노인의 낡은 삶’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일상으로 유학을 실천해 온 노인은 결국 세상을 떴다. 집은 고쳐졌으나 사람이 떠났으므로 훈기를 잃은 것이다. 노인은 곧 늙은 고택이었고, 고택은 곧 노인이었던 것이다.

먼저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부터 설명하자. 저자는 미술을 전공한 디자이너. 6년 전 서울에서 전남 구례군으로 거처를 옮기고 웹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다니며 찍은 사진과 글을 거기 올려놓는다. 그 웹사이트를 본 방송사 PD가 전화를 걸어왔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쓸 스틸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게 경북 봉화군 봉화읍의 고택 ‘송석헌’이었다. 닷새 뒤부터 대대적인 보수가 예정돼 있어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그 집에서 저자는 유교적인 삶을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의 후손 권현조(2010년 당시 83세) 옹을 만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집 뒤편 언덕 위로 올라가 조상의 산소에 문안한다. 외출을 할 때면 들고날 때마다 묘소에 또다시 올라가 인사를 올린다. 묘 주변에는 그가 매일 딛딘 길의 발자취가 마치 문양처럼 뚜렷할 정도다.

그렇게 첫 번째 만남이 있었고, 두 달쯤 뒤의 방문. 집은 보수가 시작됐고, 권 옹은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저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사람의 훈기를 잃은 채 보수를 위해 뼈대를 드러낸 고택과 요양병원에 기거하면서 ‘당최 모든 음식이 짜서’ 난감해하는 권 옹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리고 세 달쯤 뒤 저자는 권 옹의 부음을 듣게 된다. 세 번째 만남의 기록은 발인식과 마지막으로 송석헌을 들르는 권 옹의 장례행렬이다. 책의 전개는 독특하다. 어찌 보면 동영상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웹사이트의 게시물 같기도 하다. 책에서는 완급이 느껴진다. 예컨대 송석헌 전체의 모습을 담아내는 부분에서는 관조하듯 느긋한 사진과 글로 이어지지만, 이른 새벽에 마주친 권 옹이 조상의 산소에 문안하러 가는 장면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찍듯 촘촘히 찍은 사진이 짧고 숨가쁜 글과 함께 이어진다.

책에는 사진이 앞서지만, 거기 얹혀진 압축적인 글의 맛도 못지않다. 영남학파의 학맥을 잇는 마지막 정신이자, 생각과 일상이 일치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병원비를 걱정했던 노인. 그가 죽었는데도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세상 사람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보고 괜시리 억울한 심경이 들었을 저자가 마음을 다해 전하는 ‘늦게 보낸 부고’에 다름 아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