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꺾은 이준상 ‘연습생 신화’ 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준상(왼쪽)이 5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종합탁구선수권 단체전 결승에서 김민석을 물리친 뒤 최현진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월간탁구 제공

탁구에는 ‘연습생 신화’가 없다. 초등학생 선수 때 한번 서열이 정해지면 은퇴 때까지 이 순서가 거의 바뀌지 않는 게 한국 탁구의 현실이다. 우선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층이 두껍지 않아 선수의 재능 차이가 심한 것도 원인이지만 선수를 만들어 나가는 훈련 체계가 부실한 것이 ‘연습생 신화’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에이스급을 스카우트하면 은퇴할 때까지 걱정이 없기 때문에 실업팀 지도자들은 훈련보다는 고교 선수 스카우트가 최우선이다.

대우증권의 이준상(23). 9살 때인 경기 김포 하성초등학교 2년 때 라켓을 잡았다. 초등학교 때는 3번이나 우승한 유망주였지만 내동중-중원고를 거치면서 처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재능도 부족했고 매서운 맛이 없는 탁구 스타일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고2 때는 연습도 설렁설렁하다 당시 주종환 감독에게 많이 얻어맞기도 했다. 곧 마음을 다잡았지만 후배들에게까지 밀렸다. 고3 때인 2008년 재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우증권이 선수 모으기에 바빴던 덕에 실업팀에 입단했다. 이런 팀 사정상 처음에는 단체전 멤버로 기용됐지만 이듬해 1년 후배 정영식, 서정화가 입단하자 그는 다시 존재 가치가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지난주 대구에서 열린 제66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 1947년 창설된 최고 역사의 대회이자 종별 구분 없이 그야말로 국내 최고수를 뽑는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남자 단체전 결승은 대우증권-인삼공사. 대우증권이 게임 스코어 2-1로 앞선 가운데 인삼공사의 4번째 단식 주자는 차세대 에이스 김민석, 대우증권에서는 이준상이 나왔다. 이름값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2세트 중반까지 예상대로 완벽한 김민석의 페이스였다.

김택수 감독에게 우겨 이준상의 기용을 적극 추천했던 최현진 코치는 머리를 들 수 없었다. 마지막 게임이나 대비하자고 생각하고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능글능글한 경기 운영으로 김민석의 화를 돋운 이준상은 2세트를 역전시키더니 3, 4세트까지 거푸 따내, 대우증권에 재창단 후 첫 종합선수권 단체전 타이틀을 안겨줬다.

탁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연습생 신화’를 보여준 이준상은 최 코치에게 공을 돌렸다. “몸치인 데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경기에만 나가면 몸이 굳고 불안해져 그나마 가진 것마저 보여 주지 못했는데 최 코치님의 지도로 기술이 업그레이드돼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한 것이 역전승의 기틀이 됐다”고 말했다. 최 코치는 “특출한 기술이 없어 디펜스에만 치중하는 스타일을 그동안 고쳐 왔다. 이준상에게는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김민석의 공격을 견디며 상대의 장점인 포핸드 드라이브 공격 기회를 줄이기 위한 코스 공략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단식에서도 그동안 자신을 앞섰던 후배들인 정상은(2011년 종합선수권 챔피언) 등을 꺾고 8강까지 진출한 이준상은 “다음 대회에서는 4강까지 오르겠다.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시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꿈이다”고 말하며 “마롱(중국)의 안정감, 미즈타니 준(일본)의 범실이 적고 끈질긴 점, 디미트리 옵차로프(독일)의 집중력, 유승민(삼성생명)의 투지, 오상은(대우증권)의 자기관리 능력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이동윤 선임기자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