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동체, 이웃이 희망이다>도로 경계로 부촌·판자촌 ‘갈라진 삶’… 이웃은 이제 낯선 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무허가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길에 버려진 나무를 치우는 주민들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한국 사회에서 ‘이웃’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바탕이자 끈끈한 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좋은 이웃은 든든한 사회적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이웃은 점점 낯선 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화되고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나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채워주는 유일한 탈출구는 다름아닌 이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문화일보는 10회에 걸쳐 2013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갈라진 삶을 진단하고 생활공동체로서 이웃을 되살리는 방안을 다시금 고민하고자 한다.

지난 2월 25일 취임식을 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발표한 일성은 ‘100% 대한민국을 위한 국민대통합’이었다. 전대의 대통령들이 민주화, 경제성장, 선진화 등 사회 진보나 경제 발전 및 성장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이 국정목표의 최우선으로 ‘대통합’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계층과 세대, 이념 등으로 분열돼 있다는 방증이다.

이뿐만 아니라 독거노인의 고독사, 층간소음이나 거리 주차 문제로 인한 이웃 간의 분쟁 등 공동체 파괴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거리에는 겨우내 피운 연탄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동네 전체에는 단층의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집 수십 채가 옹기종기 모여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 한쪽으로는 차로 채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있는 타워팰리스 등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단지가 고성(古城) 같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때때로 구룡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체육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타고 온 고급차량들이 마을을 스쳐 지나갔지만, 차 안의 사람들은 이 마을 내부는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부터 도심 개발에 밀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서울의 마지막 무허가 판자촌이다. 왕복 8차로 도로 하나를 두고 강남의 고가아파트 단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그 삶의 모습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개발과 성장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계층 간의 갈라진 삶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시중은행 창구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3월 6일 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18년 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에 가입하려는 사람들로 서울 도심의 주요 은행 지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우대금리 혜택을 꼼꼼히 따져 가며 최고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문의하는 가입자들의 모습에는 중산층 편입의 꿈을 가진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은행 창구를 찾은 직장인 김모(여·31) 씨는 “재형저축 가입대상에 해당하는 나 자신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재형저축의 가입자격은 ‘연소득 5000만 원 이하의 근로자와 종합소득금액 3500만 원 이하 사업자’다. 김 씨는 “대학동기들과 재형저축 가입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누구는 가입자격이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자 친구들 간의 계층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같은 대학을 나와도 연봉에 따라 계층이 구분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금융상품 가입자격으로도 구분되는 서민·중상·상류층의 계층 갈등처럼 한국 사회는 전반적인 계층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계층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세대간상생위원회는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대 간 상생고용을 위한 공익위원 권고문’을 채택했다. 그에 바로 앞서 한 시중은행이 일부 직원들에 대해 62세로 정년을 연장한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정년 연장의 움직임은 세대 간의 미묘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은행권에 근무하는 성모(33) 씨는 “그동안 회사에서 근무하며 온갖 혜택을 받은 연세 높은 선배들이 이제는 정년 추가 연장까지 기대하고 있다”며 “그런 분들이 퇴임하면 신입사원 2~3명은 더 채용할 수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정년 연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일반 회사원들보다 정년이 긴 교사나 교수에 대한 정년은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중학교 교사로 임용된 정모(29) 씨는 “교육직 공무원들은 정년이 상대적으로 길다”며 “임용시험에서 떨어져 계속 실업자 상태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공무원 정년도 일반 기업 임직원들 수준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소위 20·30세대와 50·60세대 사이에서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 연례보고서에서 세대 간 갈등이 심하다고 답한 비율은 56.1%로 심하지 않다(8.9%)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이 역시 2011년 심하다고 답한 비율 49.8%보다 상승한 수치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우리 사회에서 분야마다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 이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준희·김다영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