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운동하자>어울림 가르쳐준 ‘人라인’… “닫혀있던 아이들 확 달라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인라인스케이팅 동호회 아이포츠의 배현나(왼쪽 첫 번째) 매니저와 장애인 회원,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종합운동장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포츠 회원들이 운동 시작 전 의기를 다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2일 열린 ‘2013 인천월드인라인컵’에 출전해 모두 완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얼굴 가득 환한 표정의 남자 아이 10명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쌩쌩 바람을 가른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표정 역시 환하다.

“세영아, 누구 따라가야 해?” “영배형….”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영배형….”

“그럼 앞에 있는 누구 따라가야 한다고?”

“영배형…”.

자원봉사자들이 몇 번을 주지시키자 10명이 가지런히 한 줄을 지어 스케이트를 밀고 나간다. 트랙을 도는 중간중간 자기들끼리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열을 이룬다. 누가 봐도 환상의 팀워크다.

“이렇게 한 줄로 서서 가는 데만도 꼬박 3년이 걸렸어요. 처음 이 모습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죠. 처음엔 앞서가는 조그만 아이를 확 밀쳐버렸어요. 그럼 저는 그 부모에게 싹싹 빌어야 했고… 그러던 애가 지금은 돌발행동을 덜 하고 무척 밝아졌어요.” 발달장애인 유영배(20) 씨의 어머니 기선민(49) 씨의 말이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종합운동장에 모인 발달장애인 10명과 그 가족, 자원봉사자 등 30여 명은 2009년 결성된 발달장애인 인라인스케이팅 동호회 ‘아이포츠’ 회원이다.

배현나(용인대 체육과학대학원 특수체육학과 석사 과정) 아이포츠 매니저는 당시 발달장애인 다섯 가족과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10∼20대 초반 발달장애인 15명과 그 가족들, 훈련과 대회 출전을 돕는 자원봉사자 등 매주 30∼40명 정도가 출석한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인천월드인라인컵, 춘천월드인라인컵 등 유명 인라인 마라톤대회에 빠지지 않고 출전했다.

돌발행동을 해 항상 옆에서 누군가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이 이런 대회에 출전하려면 아이 옆에서 달려 줄 ‘멘토’가 필요하다. 프로 및 아마추어 인라인 선수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발달장애인들의 활동에 감화돼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지난 2011년 인천월드인라인컵에서 아이포츠 회원 두 명이 처음으로 38㎞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또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5명이 아이포츠에서 나왔고, 2013년 장애인동계체전 쇼트트랙 서울시 대표 중 1명도 아이포츠에서 배출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을 끄는 성과를 내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잘 타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동호회 활동의 목표가 아니다.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는 일, 비장애인들이 출전하는 대회에 나가 보란 듯이 실력 발휘를 해보는 경험,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배 매니저는 “발달장애인들은 겉보기에는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지만 학습능력과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어떤 성과를 내길 바라고 체육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생활체육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사회에 적응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기 씨는 “그전에는 남들 눈치 보여서 학교 마치면 데려갈 데가 없어 아이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그마나 사춘기 때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배는 하루 2∼3시간 인라인을 타고 나면 집에 무료하게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행복해했다. 짜증이 날 때 나타나던 돌발행동도 수그러들고 밤에 잠도 잘 잤다.

사춘기 남자 아이들이 그렇듯 발달장애아들 역시 2차 성징이 시작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간질증세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다.

기 씨는 이 때문에 발달장애아들에게 “평생 생활체육이 필수”라고 말한다. 아이포츠 아이들은 인라인 타러 나갈 채비를 하면서부터 신이 난다. 대회에 출전하기 직전에는 다소 긴장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나면 성취감에 뛸 듯이 기뻐한다. 생활체육이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다.

19세인 세영이 아버지 변광수(45) 씨는 아들만큼이나 인라인스케이트 마니아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따로 그룹을 이뤄 인라인을 탄다. 아이들은 이렇게 부모에게서 떨어지는 법을 배운다. 부모들은 운동 뒤에 삼삼오오 모여 회식을 하거나 정기적으로 캠핑을 떠난다.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서로에게서 적잖은 위안을 얻는다.

세영이는 사춘기가 되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통제불능이 됐다. 장애 때문에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보다 못한 변 씨는 손찌검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세영이는 예전의 공격적인 성향이 많이 없어졌다. 또래들과 조화를 이루며 운동을 하는 법을 배웠다.

최근엔 동호회 반장을 맡아 3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가 늠름하게 마무리 체조를 선도한다. 이날 역시 반장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내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변 씨는 “처음엔 또래들과 단체로 도는 것도 어려워서 개별적으로 했다. 그러다 점차 규칙을 몸에 익혀 단체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됐고, 이제는 인라인이 아들 인생에 전부가 됐다”고 말했다.

배 매니저는 “여기 처음 올 때는 부모님들이 얼굴에 인상을 잔뜩 쓰고 계셨다. 장애인 자식이 있다는 것을 숨기면서 아이와 폐쇄적으로 살던 분들도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들부터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진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그게 우리 동호회 활동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