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대표 지식인 9명의 ‘책읽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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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뿐 / 정민 지음 / 김영사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로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독서를 집구경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는 글은 조선 후기 유학자 양응수(1700∼1767)의 문집 ‘백수집(白水集)’ 권26 ‘위학대요(爲學大要)’ 중 ‘독서법’을 정리한 글의 일부다. 주자(朱子)와 정이천(程伊川) 등 중국 송·원대 성리학자들의 학설을 집대성한 ‘성리대전(性理大典)’에서 독서와 관련된 내용을 간추린 양응수의 ‘독서법’은 글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과 유의점을 설명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책은 허균과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등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 9명의 독서 전략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말로 옮긴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시 미학 산책’ 등 40권이 넘는 저서를 펴낸 인문학자인 저자(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독서와 점점 괴리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고전을 인용해 역설한다.

소리내서 읽는 낭독의 위력이나 정독의 한 방편으로 권장되는 다독의 효과에 대한 강조처럼 반복되는 얘기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9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독서론이다.

조선 중기 문인인 허균(1569∼1618)은 중국 명대 청언소품(淸言小品)에서 따온 글을 통해 독서에 임하는 자세나 독서를 통해 삶의 운치를 깃들이는 법을 설명한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은 독서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과 위험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이익은 특히 ‘오묘한 깨달음이 오면 재빨리 적었다(묘계질서·妙契疾書)’는 장횡거의 예를 들며 독서할 때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저자도 해설에서 책 한 권이 온통 메모로 가득 차 있던 다산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책의 진실성이나 인물에 대한 포폄에 의문을 제기한 이익은 “천하의 일은 놓여진 형세가 가장 중요하고, 운의 좋고 나쁨은 그 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가장 아래가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익의 제자인 안정복(1712∼1791)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책을 1만 권 읽거나 한 책을 1만 번 읽을 것을 권한다.

이와 함께 독서의 단계를 꼼꼼하게 설정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홍대용과 어린이 독서에 관심이 많았던 이덕무의 글 등 책에 실린 선인(先人)들의 독서론은 인터넷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독서와 인문학적 사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