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원석-탁본 공동연구만이 ‘논란’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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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뤄양시문물고고연구원의 탁본 전문가인 장화궈·리광푸가 지난해 11월 11, 12일 지안박물관에서 뜬 ‘지안 고구려비’ 제2호 탁본. 비문의 요철과 각흔 및 상처를 잘 드러내 주는 선본으로 ‘지안 고구려비’ 보고서에 실려 있다.

“실물(원석)과 탁본을 다 검토한 뒤 제시된 중국의 공식 판독안을 뚜렷한 대안이 없다면 일단 존중해야 한다.” “중국 학자들의 추가 판독안 가운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만큼 우리 나름의 판독안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지난 1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임기환 서울교육대 교수) ‘지안(集安) 고구려비(사진)’ 제2차 판독회에 참석한 고구려사 및 금석문·서예사 전공자들의 의견이다. 지안 고구려비가 올해 1월 16일 국내에 소개된 뒤 열린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판독회를 마무리짓는 성격의 이날 모임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한·중 전문가들의 공동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거듭 밝혔다.

2012년 7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시 마셴(麻線)하 서쪽 강변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는 오랜 세월이 지나며 화강암의 구성성분인 석영이 빠져나오거나 자연 또는 인위적 훼손으로 앞·뒤 표면에 흠집이 많은 상태다.

정으로 쪼아만든 실제 필획과 흠집 여부는 탁본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워 비교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재 비석은 5월 1일 공식 개관한 지안박물관 1층 로비에 8각 유리관에 둘러싸이고 주변으로 1.5m 정도 떨어져 통제선이 설치된 상태로 전시돼 있다. 이날 모임에는 최근 지안박물관을 다녀온 연구자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망원경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판독이 불가능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중국 공식보고서 ‘지안 고구려비’의 내용과 한계점은 = 이성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 따르면, 지안박물관이 편저하고 지린대출판사에서 발간된 214쪽 분량의 보고서는 ‘지안 고구려비 출토기’ ‘지안 고구려비 석문’ 등 본문 8장과 4편의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8장의 일지를 통해 비 발견 경위와 조사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발견장소의 움푹 파인 현장을 유지하는 등 위각(僞刻)의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기울인 노력 등을 살필 수 있다.

‘지안 고구려비’ 보고서는 간기(刊記)가 2013년 1월로 돼 있지만 실제 편집본이 완성된 것은 지난해 11월 12일이다. 지난해 7월 29일 비가 발견된 뒤 초기 3개월여 논의 과정을 담은 것으로, 초기 비문의 조사와 연구, 보고서 집필을 주도한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 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장 개인의 이해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3D 조사와 사진자료 등 비문 판독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보고서에 반영되지 못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지안 고구려비 탁본과 추가판독안의 의미는 = 윤용구(인천도시공사 문화재 담당) 박사는 이날 지안박물관 직원인 저우룽순(周榮順)과 쑨런제(孫仁杰) 전 지안박물관 연구원, 뤄양(洛陽)시문물고고연구원의 탁본 전문 기술자인 장화궈(江化國)·리광푸(李光夫), 위리췬(于麗群) 지린성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등이 지난해 8월 14일부터 올해 1월 12일까지 뜬 탁본 14점의 이미지를 소개했다.

윤 박사는 “중국 측 인사로부터 60점 안팎을 탁본해 지안 고구려비 조사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이 한 점씩 나눠 갖고 현재 지안박물관에 50여 점의 탁본이 남아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지난해 9월 25일 비석의 보존처리 후 뜬 첫 번째 탁본으로 156자 판독의 기초가 된 저우룽순 탁본A와 비면의 요철과 각흔, 상처 등을 잘 드러내주는 장화궈·리광푸 2호 탁본을 가장 선본(善本)으로 들었다.

보고서와 별도로 한·중 연구자 6명의 석문(釋文·추가판독안)이 나왔는데, 장푸유(張福有) 지린성 문사관(文史館) 관원은 총 217자(보고서의 공식견해는 218자임)에 달하는 비문 전체의 판독안을 제시(홍콩 잡지 ‘명가’ 2월호 및 중국 월간지 ‘사회과학전선’ 5월호)해 눈길을 끌고 있다.

◆2차 판독 과정에서 새로 제기된 문제들 = 비문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세 왕의 호칭이 잇따라 나오는 5행과 비석의 건립연대 및 성격과 관련된 7행이다. 이 가운데 특히 7행의 4∼8자를 ‘정묘세간석(丁卯歲刊石)’으로 읽은 장푸유의 최근 판독안이 논쟁거리다. 지난 5월 23일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발표회에서 선주선(서예) 원광대 교수는 이 부분을 ‘정묘년간석(丁卯年刊石)’이라 읽었다.

국내에서 판독을 주도한 윤용구 박사와 여호규(사학) 한국외대 교수 등은 이 부분을 ‘호태성왕왈(好太聖王曰)’ 또는 ‘호태□왕왈(好太□王曰·□는 판독 불명)’이라 읽고 지안 고구려비를 광개토왕대 세워진 현존 최고(最古) 고구려비라고 보고 있다. 반면, 장푸유나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측은 이 비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는 정묘년, 즉 427년(장수왕 15)에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이날 여 교수 사회로 진행된 판독회에서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탁본에 나타나 있는 글자 형태로만 볼 때 7행의 5·8자가 각각 ‘묘(卯)’자와 ‘석(石)’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 연구위원은 ‘정(丁)’·‘년(年)’ 또는 ‘세(歲)’·‘간(刊)’자 등의 판독 가능성은 낮게 보았다.

7행 10, 11자 간지(干支) 부분도 ‘무자(戊子)’ ‘무오(戊午)’ ‘무신(戊申)’ 가운데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비문 전체의 성격과 관련된 7행 12, 13자의 공식판독안인 ‘정률(定律)’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사실 비문 판독과 관련된 최근의 혼란은 중국에서 비롯됐다. 공식보고서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장푸유 등 일부 중국 연구자들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날 판독회는 한·중 양국 학계가 공동으로 원석과 다양한 탁본들을 정밀하게 검토하기 전까지 비문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 자리였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