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女 윈저, 동성애 인권운동史 ‘아이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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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이 26일 동성결혼부부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자마자, 뉴욕 맨해튼에 사는 83세 할머니 이디스 윈저(사진)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윈저가 “누구시냐”고 묻자, 상대방은 “버락 오바마”라고 대답했다.

윈저는 이날 ABC뉴스, 뉴요커지 등과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내게 대법원 판결을 축하한다고 인사했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로 윈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동성애자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됐다. 지난 2010년 연방정부를 상대로 ‘결혼보호법(DOMA)’ 위헌성 소송을 제기한 지 약 3년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동성부부도 이성부부와 마찬가지로 평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996년 제정된 ‘결혼보호법’은 동성부부에 대해 연방정부의 각종 혜택 및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26일 대법원은 이 법에 대해 5대 4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윈저는 40여 년 동안 함께 지내온 시어 스파이어가 2009년 사망한 직후 물려받은 부동산에 대해 36만3000달러의 상속세가 부과되자 이듬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윈저는 자신이 2007년 캐나다에서 스파이어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부부’라면 안 내도 될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결혼보호법’ 3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뉴욕 법원은 윈저의 손을 들어줬고, 항소심 역시 윈저의 승리였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다시 항소하면서 대법원까지 가게 됐고, 결국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윈저는 이자까지 붙여 상속세를 반환받을 수 있게 됐다.

1929년생인 윈저(초혼 전 이름은 이디스 슐레인)는 20대 초 사울 윈저와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밝히고 이혼했다.

이후 뉴욕대 수학과 석사학위를 받아 IBM에 취직한 그는 1960년대 초, 한 파티에서 의사인 시어 스파이어를 만났다. 이후 오랜 세월 연인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은 스파이어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2007년 캐나다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렸다.

윈저는 26일 기자회견에서 동성애자 인권의 아이콘이 된 데 대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일 뿐”이라면서 “세상을 떠난 시어도 기뻐하며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은 ‘결혼보호법’ 위헌판결에 이어, 동성결혼 자체를 금지한 캘리포니아주의 법률 조항(프로포지션8)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금지법은 폐기 처분됐다. 반면 대법원은 동성결혼 금지 자체에 대한 위헌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국 전역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성사되지 않았으며 각 주 정부와 주민이 결정할 몫으로 남게 됐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12개 주와 수도 워싱턴DC에서만 동성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의회예산국(CBO)은 미국 전체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경우 연방정부 예산을 연간 10억 달러 이상 끌어올리는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