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甲횡포’ 막겠다는 국회가 ‘슈퍼甲’… 갈수록 포퓰리즘 치달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순화동 코리아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유호열 한국정치학회장이 입주 건물 앞 벤치에 앉아 경제악법의 폐해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유호열 한국정치학회장

지난 17일자 문화일보 1면에 게재된 사진 하나가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끌었다.

양복 차림의 중년 신사 한 명이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경제악법, 미래세대 희망 앗아간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유호열(58) 한국정치학회장(고려대 교수).

뭐가 그리 다급해서 점잖으신(?) 교수님이 피켓시위를 펼쳤을까, 정치학자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뭘까….

지난 20일 유 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중구 순화동 코리아정책연구원 사무실로 향하면서 각종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3시간여 동안 그가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 쏟아낸 우려는 넓고도 깊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경제악법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거리로 나섰다”

그와의 인터뷰 첫 화두는, 역시 국회 앞 1인 시위였다.

“이렇게 시위를 해본 건 대학교 때 시위하고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한민국 정통성을 중시하는 중도 우파 NGO예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튼튼한 경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장경제였습니다. 개인의 창의력과 기업인들의 모험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경제가 가능했던 겁니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최대한 규제가 없는 게 좋아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다분히 정치적인 표현인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오면서 경제를 많이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포퓰리즘적 법안의 문제점이 심각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속도 조절도 필요하지만 근본 가치나 사회 기본 질서가 하나하나 넘어가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걸 잃게 됩니다. 마치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 있어요. 그동안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경제악법의 문제점을 알려야 한다는 지식인의 사명감으로 세미나도 하고, 기자회견도 해보고, 성명도 발표해봤는데 그 반향이 신통치 않았어요. 그래서 그 정도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1인 시위에 나선 겁니다. 거리에 나서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렇더라도 저를 보는 의원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교수가 오죽했으면 저럴까’ 하고 생각해주지 않겠어요.”

그는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경제악법이 제정되면 5∼10년까지는 경제가 폭삭 주저앉지는 않더라도 10년 이상 지나면 성장 기반이 상실되고, 직장 못 구하는 젊은 세대가 넘쳐날 것”이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각종 규제법안으로 위축된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고 그 최대 피해는 젊은이들이 보게 된다”며 “포퓰리즘 경제악법에 반대하는 이번 1인 시위에 젊은 대학생들이 동참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점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젠 이웃을 살피고 나누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정치권에서 일감몰아주기나 집단소송제 등 기업 규제 법안을 추진하는 걸 보면 몇 개의 부도덕한 회사 사례를 일반화해 대기업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발전시켜온 한국식 경영과 기업문화는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과 장점을 갖고 있어요. 어느 정도 선에서 절충하고 보완해서 대안을 찾아야지, 무조건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악덕기업과 재벌총수는 벌 받아야 한다는 식의 징벌적 관점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편을 갈라 양극화하고, 갑을(甲乙) 관계로 대립시켜 선동적 징벌조치를 정당화하려고 해선 안 돼요. 우리 모델을 우리가 스스로 심사숙고해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포퓰리즘 바람에 맞설 수 있는 거물정치인 보기 힘들다”

요즘 국회가 갑의 횡포를 바로잡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는데 일각에선 국회야말로 갑 중의 갑, 슈퍼 갑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는 어떨지, 궁금했다.

“국회가 슈퍼 갑입니다. 역대 어느 때보다 국회의 힘이 세요.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국회가 갈수록 인기 영합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소신을 갖고 기반을 갖춘 사람들보다는 가까스로 의원이 된 사례가 많아서인지 외부의 흐름에 너무 민감해요. 국회에 거물이 없어요. 5선, 6선 등 중진 의원들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지식과 리더십과 비전을 갖춘 의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경제민주화 바람이 분다고 하더라도 한국경제 현실과 시장경제질서를 감안해서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경제민주화의 큰 틀에 역행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바람을 견뎌낼 만큼 기반이나 배짱 있는 의원이 적어요. 경제뿐 아니라 다른 부문도 마찬가집니다. 굉장히 강한 국회는 됐는데,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굉장히 허약하다보니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발을 붙이고 확산될 수 있는 토양이 돼 있는 셈입니다.”

유 회장은 국회를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평가하며 말을 이어갔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철만 지나가면 견제자가 없어집니다. 그나마 의원들이 제일 겁내는 게 언론이에요. 국회의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선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인터넷언론이 급증하고 언론환경이 혼탁해지다보니 언론의 역할이 많이 약해지고 제대로 된 언론의 견제장치가 작동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국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언론의 기능이나 영향력을 건전한 방식으로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최근 남발되는 의원발의 법안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내보였다.

“절차적으로 간단하다보니 의원발의 법안이 많아졌는데, 이는 부실법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의원들의 과잉 부실법안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원 평가예요. 그동안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의원 평가를 하면서 정량적 평가를 많이 했어요. 출석률이 얼마나 되느냐, 법안 발의는 얼마나 했느냐 등이 의원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한 법안에 수십 명의 의원이 들어가고 비슷한 법안이 쏟아지면서 부실법안, 베끼기법안 등의 문제가 나온 겁니다. 정부에서 발의하는 법안은 그래도 꼼꼼한 절차를 거쳐 진행돼왔는데 국회 선진화법이 만들어진 이후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려워지다보니 정부도 상대적으로 손쉬운 의원발의로 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요.”

“이렇다보니 법 책임성이 약해지고, 법 만능주의만 득세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젠 시민사회단체나 학회 등에서도 국회의원 평가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의원에 대한 평가방법을 정량평가에서 질적평가로 바꾸고, 법안에 대해서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정치”

경제계, 특히 재계에서는 정치를 일컬을 때마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한국정치’라는 표현을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정치와 경제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경제문제라고 해서 무조건 경제논리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겠죠. 경제 자체는 경제논리로 되더라도 큰 틀에서는 조화와 균형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갑을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갑을 약화시키면 을이 보상을 받거나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 을 다음에는 병도 있고 다 있잖아요. 이런 걸 조율하고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정치인 것 같아요. 저도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지만 정치학의 기본은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면 경제를 효율적으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해나갈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이고, 정부 정책상의 근간이라면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정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재계가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이해가지만 정치와 경제 양쪽이 각자 영역을 존중하면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선순환하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의 바른 관계를 설정해가는 데 있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만한 곳은 없을까.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경제나 정치 모두 핵심 단위는 인구수예요. 영토는 그 다음 조건이지만 인구가 어느 정도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거든요. 우리 인구는 5000만 명이죠. 스웨덴은 900만, 네덜란드도 1000만 명 정도예요. 최소한 인구를 놓고 보면 독일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통일이 돼서 8000만 명 정도니까요. 독일이 통일을 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관계 얘기할 때 독일이 워낙 경제를 잘 운영해왔기 때문에 통일도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따라갈 필요는 없겠죠. 선거제도라든지 경제, 복지 모든 면에서 독일을 연구하되 하나의 벤치마킹 대상이나 반면교사로 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 정상화돼도 추가 중단 가능성 대비해야”

국내 대학 학부에 단 2곳밖에 없는 북한학과의 교수(고려대)로 재직 중인 유 회장은 북한연구의 권위자면서 대표적인 합리적 보수 북한학자로 꼽힌다. 그에게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슬쩍 물어봤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현재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 같아요. 북한이 핵실험하고 주변국가, 특히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기보다는 협조하는 분위기로 전환됐으니까요. 최소한 우리 내부에서나 미국, 중국하고도 신뢰라는 키워드 들고 나갔을 때 비핵화하는 데 대해서 추호의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북한 핵에 대한 강한 억지력을 강조하면서도 항상 대화를 얘기하는 거 보면 절제된 압박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보여져요. 퇴로를 열어주는 식으로요. 이명박정부 정책이 압박위주로 살벌했다면 새 정부는 다소 차별화된 것 같습니다. 새 정부는 북한의 핵도발 협박 이런 데는 다른 어떤 정부보다 강하게 대응할 거고, 억지력 강화하는 것도 그렇고, 대신에 그런 상황이 종식되고 새 단계 들어오면 또 진정성 있게 북한과 대화하거나 북한 지원할 준비는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국내 남남갈등 해소에도 이런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은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는 5년 동안 할 겁니다. 최소한 원칙을 막 바꾸는 그런 거는 안 할 것 같아요. 안보 문제는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확실하게 할 의지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우리 내부의 다양한 대북접근 부분을 어떻게 정면으로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새 정부의 큰 과제가 될 겁니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남남갈등의 파고를 겪으면서 북한에 접근해 크게 일을 벌였지만 성과 없이 끝났고, 이명박정부도 북한과 남한 진보 양측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어요. 남북 문제는 내부 갈등 세력을 얼마만큼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남북 통일 문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을 무시하지 않고, 휩쓸려 가지도 않으면서 끌고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끝나면 정부가 통일 문제나 남북 문제를 갖고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유 회장은 “개성공단이 극적으로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개성공단의 추가 중단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며 “북한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공단운영을 중단하거나 폐쇄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상수’로 놓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정상화된다면 북한이 언젠가 또다시 일방적으로 공단을 폐쇄해도 잠깐 물러나 있다가 또 정상화되면 들어가 공장운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랄까, 위험노출에 대한 탄성이 있는 기업들로 개성공단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비정신 살아 있는 한국정치 미래 낙관”

한국정치학회는 6·25전쟁 직후인 지난 1953년 창립돼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정치학회장으로서 그는 남다른 감회를 느끼는 듯했다. 또 한국정치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할 말’도 많은 듯했다.

“오는 8월에 한국정치학회 60주년 기념 세계 학술대회를 하는데, 주제가 인플런스 앤드 컨트리뷰션(influence and contribution)이에요. 그동안 세계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았던 나라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던져주고 그것을 기회로 인류에 대해 기여하는 나라로 가야 한다는 취지로 주제를 잡은 겁니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많은 역경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시스템상으로의 발전 수준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특히 선거제도는 세계 최고라고 인정을 받고 있어요.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200년 했는데도 선거비용 감당 못해 난리인데, 우리나라에 와서 선거시스템 살펴보고 ‘어떻게 그렇게 비용 안 들이고 선거가 가능하냐’며 깜짝 놀랍니다. 올해 전 세계 선거 관련 기구들이 회의를 하는데 잘되면 국제 조직으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케이(K) 데모크라시로 상징되는 한국 민주주의가 케이팝(K-POP)처럼 세계적인 한류를 이끌어가는 대표상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치 시스템의 발전에 걸맞게 정치인들도 보다 성숙하고 창조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치가 후진적으로 비춰지는 이유 중 하나가 국회 폭력입니다. 이 문제는 그게 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면 해소될 겁니다. 국회는 개혁의 주체이기도 하고 대상이기도 한데, 저는 그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새 인재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우리만 한 데가 없어요.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래도 사회의 지적 수준이나 배경이나 우리처럼 좋은 데가 없어요. 정치해서 부를 세습하려는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보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어요. 그 근원에는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이 있다고 봅니다. 선비정신이 결국 정치인데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고급 인재들 중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이들이 아직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는 “한국 정치현실이 정치인들에게 초인적인 체력를 요구하는데, 4년이 지나고 나면 정치인들이 완전히 생각 없는 기계처럼 변하는 것 같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 만나고 토론하고 좀 더 창조적 분야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병직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