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저항’ 逆이용한다

자동차 기술 발전은 공기와의 싸움이라 할 정도로 차량에 공기 저항은 극복의 대상이다. 차량의 속도가 2배 빨라지면 공기 저항은 속도 증가분의 제곱인 4배가 늘어난다. 공기 저항이 증가하면 주행효율이 떨어져 연비가 나빠지고, 소음과 진동도 증가해 승차감이 떨어진다. 공기 저항은 차량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빠르고 승차감과 연비가 좋고, 안전한 차량에 대해 욕구가 커질수록 공기를 다스리는 자동차 기술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차량을 잘 살펴보면 구석구석에서 공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첨단 장치 및 시스템들을 찾아볼 수 있다.

2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공기 저항을 줄이려는 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최고급 세단 K9에는 엔진룸 온도와 주행조건에 따라 공기 흡기구가 자동으로 개폐되는 액티브 에어플랩이 적용돼 있다. 흡기구를 모두 열어 놓았던 이전 방식과 달리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엔진룸 온도를 낮추는 첨단 장비다. K9은 액티브 에어플랩을 탑재해 공기저항계수(Cd)를 0.01 낮췄다. 이 같은 장치는 캐딜락 ATS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기저항계수는 공기 밀도, 차량 속도, 공기와 부딪치는 단면적 등 복잡한 공식으로 산출되지만 수치가 낮을수록 공기저항이 적다는 의미다. 공기저항계수가 10% 낮아지면 연비는 2% 정도 향상된다.

공기 저항을 줄이는 기술은 공기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차량 전면부에 많이 적용돼 있다. BMW 차량의 전면 범퍼를 꼼꼼히 살펴보면 양측 하단에는 ‘에어 커튼’이라는 뒤쪽으로 뚫려 있는 좁은 통로를 볼 수 있다. 이 좁은 통로를 통해 공기가 타이어와 휠 바깥쪽을 커튼처럼 감싸면서 흘러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에어 커튼이 적용된 뉴 520d는 공기저항계수가 0.25로 중형 세단 가운데 가장 낮다.

닛산의 슈퍼카 GT-R 전면부에서는 공기 저항을 줄이면서 고속주행 시 차량을 눌러주는 힘(다운 포스)이 작용하는 ‘에어로-블레이즈’라는 특유의 디자인을 볼 수 있다.

BMW 뉴 3시리즈 그란 투리스모에는 앞바퀴 뒤쪽 차체에 비스듬하게 뚫려 있는 구멍(에어 브리더)이 있다. 에어 브리더는 에어 커튼을 통과한 공기를 우회시켜 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측면 디자인의 포인트 역할까지 한다. K9의 앞·뒷바퀴 주변을 자세히 보면 앞쪽에 사각 모양으로 튀어나온 ‘디플렉터’를 볼 수 있다. 디플렉터는 타이어 주변의 공기 흐름을 바꿔 주어 공기저항계수를 0.01가량 낮춰준다.

공기 저항은 차체의 디자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만큼, 업체들은 공기 흐름을 연구하는 풍동 실험실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999년 경기 화성시 남양연구소에 아파트 3층 높이의 송풍기로 시속 200㎞의 바람을 일으키는 실험실을 완공했다.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옆에서 보면 삼각형에 가깝다. 앞쪽(A) 필러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하고, 차체 상판을 뒤쪽으로 이동한 디자인 덕분에 프리우스는 공기저항계수를 BMW 뉴 520d와 같은 세계 최저 수준인 0.25까지 줄였다.

벤츠 뉴 SL 63 AMG는 긴 보닛과 넓은 후미 등 정통 로드스터(차량 지붕이 없는 컨버터블 스포츠카) 비율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인 공기 역학 디자인과 경량화 실현으로 ‘유로카 보디 어워드 2012’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이 차에는 탑승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지지 않도록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는 전동 바람막이가 장착돼 있다.

공기 저항은 차량의 안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토요타의 뉴캠리 사이드 미러와 뒤쪽 램프에는 차체 주변과 뒤편에서 와류(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에어로 핀’이 설치돼 있다.

항공기 날개의 끝부분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돌기 모양의 ‘윙렛’이 항공기의 속도와 안전, 연료효율에 영향을 미치듯이 에어로 핀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에어로 핀은 차체 양쪽을 눌러주는 압력을 발생시켜 진동을 잡아주고, 핸들링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공기 저항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공기 저항이 너무 낮을 경우 고속 주행 시 작은 흔들림에도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뒤편에 비행기 날개를 거꾸로 달아 놓은 형태의 ‘스포일러’를 달아 공기 저항을 이용해 차량을 눌러주기도 한다. 최고 출력이 500마력이 넘는 페라리 같은 슈퍼카들은 안정적인 코너링과 고속주행을 위해 공기 저항을 높이는 설계를 하기도 한다. 유병권 기자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