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촬영할수록 오버액션… 스트레스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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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700만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배우 이정재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수양대군 역을 맡은 그는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등장하지만 들끓는 욕망, 동물적 감각과 냉혹한 판단력을 지닌 매력적인 안타고니스트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제까지 주로 세련된 도시남, 감정을 삭이는 내성적 인물을 연기했던 그는 ‘관상’을 통해 야성적 매력을 화려하게 드러내며 배우로서의 자신의 무대를 한꺼번에 넓혔다. 올해 연기 20년을 맞아 24일부터 마포구 상암동 KOFA에서 ‘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 특별전’도 여는 그를 최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본능적이고 욕망에 들끓는 센 역할이다. 어떻게 선택했나.

“시나리오에서 수양대군이 굉장히 멋있었다.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라서 약간 불안하긴 했으나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안타고니스트의 축으로 가만히 있어도 위엄있는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 ‘나 이렇게 하고 있어요’라는 식으로 보여주는 연기보다는 표현을 간소화시켜서 연기하는 미니멀리스트인데 수양대군은 파워풀하게 보여줘야 했다. 의상, 분장은 물론 목소리 톤까지 신경 썼다. 얼굴에 상처를 만들었고 목소리 톤도 낮췄다. 촬영장 가기 2시간 전부터 발성연습을 해 약간 쇳소리가 나도록 했다.”

―한재림 감독의 주문은 있었나.

“감독님이 ‘하녀’의 돈 많은 부자 훈 역을 보고 나에게 수양대군 역을 제안했다고 했다. 그런 남자인데, 기품있는 수양대군. 그런 카리스마를 보여 달라고 했다.”

―실제로 수양대군 역은 어땠나.

“너무 재미있었다. 안으로 삭이는 역을 주로 하다 분출하고 터뜨리는 연기를 하니까 스트레스가 풀렸다. 오히려 갈수록 오버액션이 됐다. 현장에서 첫 번째보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몸짓도 커졌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잘 잡아줬다.”

―수양대군은 어떤 인물로 설정했나.

“복잡하고, 다양하고, 생각이 많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관상’은 수양대군의 영화가 아니라 관상가 내경과 그 가족의 애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양이 내경을 제대로 힘들게 해야 후반을 비극으로 몰아갈 수 있다. 수양대군의 고민 장면들이 편집돼 폭력적이고 야욕을 지닌 인물로만 묘사돼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일장일단이 있다. 고민 부분이 많이 들어갔다면 수양대군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겠지만 이를 덜어냄으로써 보다 강렬한 인물이 됐다.”

―올해 연기 20년이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어 별다른 느낌은 없다. 돌아보면 20대 후반부터 나는 성인이니까 무게감있는 남자처럼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좋은 작품 제안이 많았는데, 남성적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지났고, 관객과의 사이가 좀 멀어진 시간도 있었다. 호기심이 많아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변에서 ‘도대체 일 안 할 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내가 연기를 안 하고 사업만 할 수 있나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사업을 다 접었다. 그즈음 ‘하녀’에 출연했는데,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금씩 자신감이 더 생겼다. ‘도둑들’ 때는 역할은 크지 않았지만 재미있었고, ‘신세계’ 때부터 일하는 것이 편해졌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을 해야겠다 이렇게 정하진 않았다. 분명한 것은 연기에 대한 흥미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들 역시 새로운 모습을 원할 것이고, 나 역시 호기심이 많다.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열심히 그리고 충분히 만들어 가고 싶다.”

글 = 최현미 기자 chm@, 사진 =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