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길 걸었기에 더 배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단돈 80만 원, 카메라와 노트북만 들고 물물교환으로 1년간 유럽을 여행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9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동기 세 명과 등록금 마련을 위해 영상제작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등록금의 반도 안 됐다. 그 돈으로 유럽 여행을 갈까 하다가, 민박 홍보영상을 만들어 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식으로 물물교환을 하면 유럽에 무한대로 머물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몇 분 만에 1년간 유럽을 여행하고, 마지막엔 영국에 가서 제2의 비틀스가 될 만한 밴드를 발굴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이 1년의 과정을 다큐로 제작하자고 했다. 그 다음주 우리는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떠났다.”

―학교까지 그만둘 필요까지 있었나.

“돌아올 곳이 없어야 더 절실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 같았다. 게다가 주변에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우리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경쟁에 끼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잉여 프로젝트가 남들에겐 극단적이고 무모해 보이겠지만 우리에겐 보편적인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쉬웠다. 몇 살에 군대를 가고, 결혼을 해야 하는 사회적 적정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는 지금 행복한 쪽을 택했다.”

―실제로 여행 한 달 반 만에 유럽 호스텔계를 평정했는데.

“프랑스에 도착해 유럽 전역의 호스텔에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히치하이킹으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거의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때 이탈리아의 한 호스텔에서 연락이 왔다. 거기서 영상을 만들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뒤 하루에 유럽 전역 50곳에서 요청이 오기도 했다. 비행기표를 포함해 조건도 점점 좋아졌다. 돌아올 때까지 30편 정도 만들었다.”

―1년간 무엇을 얻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는 점이다. 1년을 여행했고 세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영화도 개봉하게 됐다. 보편적인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에 많은 것을 배웠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는 더 이상 잉여인간이 아니다.” 다큐가 끝나갈 무렵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하지만 그가 건넨 명함 위엔 영화제작사 이름이 ‘Surplus’(잉여)라고 인쇄돼 있었다. 그 위엔 ‘I hate working’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잉여, 자발적인 잉여, 다른 선택을 하는 잉여”라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 세상은 더 치열해지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며 군대에 간 친구들이 돌아오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