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한계 드러낸 북한식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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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

지난달 20일부터 사흘 간 중국 옌지(延吉) 시 옌볜(延邊)대에서는 2013년 두만강 포럼이 개최됐다. 올해로 6번째인 두만강 포럼에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 환동해권에 속하는 일본, 러시아, 미국, 몽골, 그리고 북한 학자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 지역에서의 교류 협력과 평화 공영을 증진하기 위해 다문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정치·경제는 물론, 역사·문화·민족·법률 등 6개 분야에 총 2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두만강 포럼이 표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고립되고 폐쇄적인 북한 학자들을 초청해 그들이 준비한 논문을 발표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주창일 김일성대 사회과학부총장을 비롯해 모두 9명의 김일성대 교수가 김정은 시대의 선군정치, 동북아시아에서의 안정과 국제 협력을 위한 한반도에서의 냉전 종식 등 정치외교 분야 논문들뿐만 아니라, 나선경제무역지대의 발전을 위해 북한의 특수경제지대의 설정 배경, 법 체계의 특징 및 외국인 투자 활성화 방안 등 경제 회생을 위한 논문들을 집중 발표하는 데 대한 각국 학자들의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9명의 북한 학자가 숙소인 옌지의 백산호텔까지 도착했지만 막상 포럼이 개막되는 날 새벽까지 북한 대표단은 자신들의 회의 참석을 놓고 주최 측과 지루한 협의를 계속했다. 쟁점은 단 하나, 옌볜대와 함께 포럼의 공동 주최자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명칭, 그 중에서도 ‘한국’이란 용어를 대회 현수막에서 제거할 것을 북한 측에서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다. 결국 북측은 그들의 완고한 태도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대회 참가를 보이콧하고, 평양에서 옌지까지 그 먼 길을 다시 야간열차 편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변화를 지적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많은 국내외 인사들도 김정은 시대의 변모를 다각도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북한 내부에서 시장경제적 요소들이 너무도 만연되고 있어 북한 당국도 더 이상 이러한 변화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는 전망까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가 외부, 특히 중국에 의존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의 정책이나 체제가 이를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활용하거나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도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의 자기 중심적 세계관이나 적대적인 대외관, 한국이나 미국에 의한 피포위 의식에 잠식돼 표출되는 적개심과 두려움 역시 지난 6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지난달 두만강 포럼에서 북한 최고 지식인들의 일방적 철수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으며, 최근 한국 드라마를 불법 시청했다는 죄목으로 수십 명의 북한 주민이 공개 처형됐다는 소식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급변하는 주변 정세를 보다 객관적으로 진지한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지난 60년 간 주변국들을 상대로 자신들은 결코 손해볼 게 없다는 셈법을 그대로 고수해 왔는데, 이제 그 셈법도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걸 개성공단으로 복귀한 북한 근로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빈손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김일성대 교수들도 실감했을 것이다.

정부는 13일 방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러 합작으로 북한 나선경제특구 개발에 본격 참여하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구체화하고 러시아의 지지와 협조를 적극 도출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셈법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러시아를 통한 물류와 에너지 수송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를 관통하는 남북한 간의 실질적인 교류 협력의 진전이다. ‘한국’이라는 용어 하나로 최고 지식인들의 행보를 좌우하는 북한식 셈법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임을 북한 당국이 절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한국과 러시아 담당자들은 시작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