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칼 빼들었지만 주춤… “시간 끌며 CADIZ 고착화 노려”

지난 23일 기습적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칼을 빼든 중국이 한국과 미국, 일본 등 관련국의 ‘무통보 비행’에 대해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의 대응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중국 정부 내에 혼재된 기류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상 외로 미국이 강하게 나오자 군사적 긴장 상승은 오히려 중국에 불리하다는 판단하에 톤을 낮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실패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중국이 CADIZ에 대해 엇갈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한·미·일이 사전 통보 없이 전투기를 이 구역에 내보낸 데 대해 중국이 예상보다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에서 나오는 반응이 혼란스러우며 모호한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군 공군 소장인 차오량(喬良) 국방대 교수는 중국이 CADIZ를 선포한 23일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에 “상대방이 경고를 듣지 않고 영공 내로 진입한다면 중국은 이를 격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도 미국과 일본의 반발에 대해 “미·일은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권리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26일 미국의 폭격기 2대가 사전 통보 없이 CADIZ 내를 비행하자 국방부는 “모든 상황을 다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성명을 밝힌 데 그쳤다. 중국 언론에 뒤늦게 이 사실이 보도돼 ‘왜 대응하지 못했느냐’는 여론이 나오자 국방부 양위쥔(楊宇軍) 대변인은 28일 “CADIZ는 비행금지구역이나 영공 확장이 아니며 더 안전한 항공 운행을 위한 것으로서, 격추 제안은 잘못된 것이다”고 진화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러나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지난 1969년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일본은 CADIZ 선포에 대해 참견할 권리가 없다”면서 “철회를 하려면 오히려 일본이 먼저 해야 하며 중국은 일본 철회 후 44년이 지나면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공군이 CADIZ에 여러 대의 전투기와 한 대의 조기경보기를 띄웠다고 밝혔다.

호주 로위국제관계연구소의 로리 메드칼프 국제안보국장은 “중국의 CADIZ는 일방적인 선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시점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 영토분쟁 중인 지역을 포함시켜 선포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중국은 극단적인 군사적 긴장 고조는 피하면서 시간을 끌어 점차적으로 주변국들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시 주석이 중국을 고립무원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는 시진핑의 외교적인 실패라고 분석했다.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예상 외의 미국의 즉각적인 강력한 대응에 당황해 엉거주춤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고 있다.

박세영 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