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공기업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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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서울대 교수·경영학

최근 기획재정부가 정부가 주요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12개 공기업의 2012년 부채 총액이 412조 원을 넘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뿐 아니라 공기업들이 안고 있는 전체 부채 역시 2008년 대비 2배 이상 늘어 우리나라 국가채무(442조7000억 원) 총액조차 초과하는 수준이 됐다.

공기업 부채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공기업 혁신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황찬현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자리에서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아 달라’고 주문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 문제의 원인은 방만 경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공기업들의 부채가 이렇게까지 늘어난 데는 외적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기업은 공공요금 인상 억제와 같은 정책적 이유 때문에 민간 기업처럼 탄력적인 가격 관리 및 매출 증대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한전의 경우에는 2000년부터 지속적인 유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 인상 우려 때문에 정부로부터 전기요금 인상을 승인받지 못했다. 그 결과 한전의 원가보상률은 2008년에 77.7%까지 떨어졌고, 같은 기간 한전의 부채 규모는 3배 이상 급증했다. 즉, 그동안 늘어난 부채의 상당 부분을 낮은 전기 요금으로 국민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정부의 영향력 때문에 공기업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효율적 경영보다는 대형 국책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전 정부의 4대강사업과 경인아라뱃길사업에 필요한 투자비를 부채로 조달하면서 지난 5년 동안 부채가 8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외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기업들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대다수의 공기업이 민간 기업 대비 경영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 대비 대다수 공기업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상대적으로 높고, 반대로 이직률은 낮다. 특히, 원자력 분야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내부 및 외부 감사 기능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공기업 혁신 문제는 한국 경제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절실한 과제다.

공기업 혁신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해답이 바로 민영화다. 하지만 20∼30년 전부터 거론된 민영화가 공기업 혁신 방안으로 의미를 잃어가는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보유한 지분율이 계속해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영화가 모든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다양한 해외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민영화가 시장 경쟁을 통해 해당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해당 서비스 요금을 인상하는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창조적 공기업 혁신 대안(代案)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공기업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개선시키는 방법이다. 공공성을 위해 공기업의 국내 시장 독점은 허용하되, 동시에 적극적인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한 글로벌 경쟁을 활용해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안이다.

국내보다 훨씬 치열하게 경쟁하고 생존하기 어려운 시장이 바로 글로벌 시장이다. 국내 공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와 화이트칼라 혁신을 통한 경영 효율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해외 시장 매출액이 증가할수록 특정 공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 역시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 과정을 통해 한국 공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금도 경쟁력이 열악한 한국 공기업들이 어떻게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역시 30년 전에는 오늘 같은 글로벌 위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동안 매년 반복돼 온 국정감사와 경영평가가 공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