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기초과학 성과 없이는 그 어떤 하이테크 기업도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하렐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는 지난 11월 21일 대구 엑스코에서 “기초과학 연구와 기술 특허 활용 활동이 확실히 구분된 바이츠만과학연구소 덕분에 30년 넘게 컴퓨터 과학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기초과학 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영리하고 실용적인 하이테크 벤처기업들이 다수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 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데이비드 하렐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게 생소하단다.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곤 우리나라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이번 한국 방문도 우연찮게 이뤄졌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이 일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바이츠만과학연구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신 총장은 다니엘 자즈프만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총장에게 DGIST가 기획하고 있는 ‘DGIST 글로벌 이노베이션 페스티벌 2013’ 행사에 연설자로 참석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일정을 살펴본 자즈프만 총장은 난색을 표명하면서 “나는 어렵고 우리 연구소를 대표할 만한 사람을 보내겠다. 오히려 나보다 그 사람이 나을 것”이라며 역제안을 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총장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신 총장은 그 자리에서 승낙을 했다.

자즈프만 총장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하렐 교수였다. 하렐 교수는 지난 11월 21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DGIST 글로벌 이노베이션 페스티벌 2013에 참석, ‘총체적 유기체의 모델링 프로젝트(The Whole Organism Modeling Project)’란 주제로 기조 연설을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대뜸 ‘코끼리를 어떻게 전산화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하렐 교수는 생명체를 총체적으로 모델링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는 매우 난해한 과제이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만일 성공할 경우 기존 생물학·의학 분야에서 나온 연구 결과의 결함을 찾을 수 있고 이를 수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체를 모델링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명체를 해독하겠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가장 앞선 지식을 보유해야 하고 생물학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비로소 연구 수행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렐 교수는 기조 연설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우선 우리나라의 인상에 대해 물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곳에 와서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좀 둘러봐야 할 것 같군요. 다만 처음 방문한 곳이어서 약간 설레긴 합니다. 한국에 대해선 글쎄요. 별로 아는 게 없네요. 삼성전자 스마트폰 정도. 우리 손녀딸이 늘 손에 쥐고 살고 있지요. 아, 현대차도 있군요.”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대해 물었다. 역시 시원찮은 반응이 돌아왔다. 하렐 교수는 “잘 모르겠어요. 삼성전자가 ICT 기기 쪽에선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컴퓨터 과학, 즉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선 미국 등 서양 국가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는 편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 즉 컴퓨터 과학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를 응용해서 빛나는 사업적 성과를 내는 것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의 평가 기준은 컴퓨터 과학의 학문적 성과에만 국한됐다(그가 유능한 컴퓨터 과학자이고 그의 평가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컴퓨터 과학 분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김민수 DGIST 정보통신융합공학전공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컴퓨터 과학 전 분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순 없지만 산업 영역에서는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학문 영역에서는 데이터베이스(DB)와 빅 데이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이스라엘은 정치·경제적으로 미국 등 서양 국가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이스라엘 학계 역시 서구 편향적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하렐 교수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의 연구 분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기조 연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떻게 코끼리를 전산화할 수 있을까요. 가장 단순한 것은 그냥 보이는 겉모습과 움직임을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일 겁니다. 가령 모델링을 육안으로 잘 볼 수 있도록 그래픽 기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DNA(유전자의 본체)로부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보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죠.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완전한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며 어떻게 이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자 보세요. 생명체란 모든 면에서 반응적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하렐 교수는 1986년 이와 관련된 논문을 쓴 바 있다). 가령 미국의 F-22 랩터 전투기는 사람이 만든 복잡한 반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코끼리 역시 자연 혹은 신이 만든 복잡한 반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여러 대의 랩터 전투기들은 일종의 반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듯이 여러 마리의 코끼리 무리도 일종의 반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랩터 전투기를 모델링할 수 있듯이 새로운 개념의 프로그래밍 언어나 도구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랩터 전투기와 반응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다를 게 없는 코끼리와 같은) 생명 시스템을 모델링할 수 있고 모의 실험을 해 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모델링된 자연은 자연 시스템처럼 포괄적이며 현실적이고 또 당연히 창발적 특성을 갖겠죠. 이렇듯 생명체를 모델링하는 것은 큰 도전이며 제 연구 과제입니다. 이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나 국가과학재단(NSF) 등에서 수행하는 일반적인 연구, 가령 컴퓨터를 활용한 DNA 분석과는 다른 것입니다.”

생명체를 모델링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렐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생명체를 모델링하는 연구는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밖에 없고 특성상 논쟁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쪽에선 엄청난 기대감을 보일 테고 또 다른 한쪽에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겠죠. 또 어머어마한 양의 작업과 학제 간 협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성공 가능성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만일 우리 의도대로 성공한다면 사상 유례없는 결과물과 이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설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도전 자체로 대단한 가치를 얻는 것이며 인접 분야 연구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모델링은 세포 간 커뮤니케이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세포 단위 혹은 세포 안에 있는 분자 간 커뮤니케이션 수준에서, 어쩌면 유전체(게놈) 혹은 프로테오믹스(유전체 구조와 유전자의 세포 내 행동 간 갭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 생성물과 이들 간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분야), 혹은 생화학과 물리학 수준까지 이뤄져야 합니다. 시스템과 관련돼 알려진 모든 것을 포괄하고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전부 예측 가능한, 포괄적인 모델링 작업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렐 교수는 자신이 수행한 연구 중 한두 개를 소개했다. 쥐가 코 주위에 묻어 있는 먼지와 같은 이물질을 킁킁거리는 동작을 통해 제거하는 메커니즘을 모델링했다는 것이다. 또 췌장 세포 전체를 반응 시스템으로 모델링하기도 했다. 반응 시스템으로 모델링하고 시각화한 뒤 절단면을 살펴봤는데 실제 췌장 세포 절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과 동일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이 모델이 자연 시스템을 완벽히 모사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겉보기에는 유사해 보여도 속을 뜯어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튜링 테스트와 유사한 테스트를 사용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렐 교수는 주장했다. 튜링 테스트란 기계의 인공지능 여부를 판별하고자 하는 테스트로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앨런 튜링이 지난 1950년 제안했다. 실제 생명체와 모델링된 시스템 간 차이를 분간할 수 있다면 그 모델은 실패한 모델이며 다시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0∼20년 후에는 모든 생물학자들이 컴퓨터 과학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체의 완전한 모델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봅시다. 기존 생물학과 의학에서 이뤄진 연구의 결함들이 모델링 작업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생물학·의학 분야의 새로운 실험을 제안하거나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창발적 특성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실험실 관찰을 통해선 발견할 수 없는 생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약 분야에서도 일대 혁명이 일어날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컴퓨터 과학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생명체의 총체적 모델링은 전 세계에서 우리 연구팀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 영역은 이외에도 두 가지 정도 더 있습니다. 사실 모두 연관이 있긴 합니다만. 현재 흔히 사용되는 자바와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는 너무 저수준의 프로그래밍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는 제가 목표로 두고 있는 생명체 모델링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보다 훨씬 고수준의 강력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반응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 기반의 프로그래밍 언어인데요. 예를 들어봅시다. 식탁 위에 컵이 있어요. A라는 사람은 컵 안에 든 물을 마신다고 합시다. B라는 사람은 컵을 쳐 물을 쏟는다고 합시다. 또 C라는 사람은 컵을 치울 수도 있습니다. 컵과 관련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경우의 수, 다시 말해 시나리오는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수학적으로 포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일단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해서 의외의 시나리오가 나올 경우에는 다시 이를 프로그래밍 언어에 반영합니다. 이를 지속적으로 반복할 경우 컵을 둘러싼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시나리오 기반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나리오 기반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생명체 모델링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세포면 세포, 유전체면 유전체 등 임의로 정한 단위로 각각의 시나리오를 설정한 뒤 이를 시뮬레이션하면 생명체 특성상 창발적 특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발적 특성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결과적으로 생명체 모델링에 적합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우리 연구팀의 고유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머지 하나의 목표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이른바 냄새 통신이라는 건데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생물학과의 노암 소벨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하고 있습니다. 냄새를 분석해 통신수단을 통해 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냄새를 유발하는 화학적 성분을 빠르게 분석하는 게 관건인 셈이죠. 커뮤니케이션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냄새 재생기를 통해 내가 맡고 있는 냄새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현재 바이츠만과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는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었던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 세운 이스라엘 최고의 기초과학 전문 연구기관이다. 대학원 중심의 대학으로 현재 2500여 명의 학생, 박사 후 연구원, 교수 그리고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이 연구소는 기초과학 연구기관답게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화학, 수학·컴퓨터과학 등 5개 분야의 기초과학만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하렐 교수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화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다 요나트 교수가 지난 200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과 교수로 있었던 마이클 레빗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2013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수학·컴퓨터과학과 동료들 중에선 튜링상을 받은 사람이 셋 있습니다. 노벨상이 없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죠”라고 말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는 지난 2013년 상하이자오퉁(上海交通)대 선정 대학 순위에서 92위에 올랐다.

특히 바이츠만과학연구소는 기초과학 전문 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기술 특허 활용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기술 특허를 외부에 전수하는 이른바 기술지주회사 ‘예다’는 현재까지 600여 건의 기술 특허권을 기업에 전수했다. 이들 특허를 활용해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는 모든 기업들이 거둔 매출 규모는 한 해 약 1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비단 바이츠만과학연구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히브리대나 텔아비브대도 각각 이숨, 라모트라는 기술지주회사를 운영해 막대한 기술 특허 수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렐 교수의 이력을 보면 그도 벤처기업 아이로직스의 공동 설립자인 것으로 나온다. 하렐 교수는 하지만 자신은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지난 1987년 지인 3명과 함께 아이로직스를 설립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경영에 참여는 안 했어요. 나중에 스웨덴의 텔레로직에 회사를 팔았죠. 텔레로직은 다시 미국 IBM에 인수되고요. 지분 참여를 한 덕분에 돈을 벌긴 했지만 많은 액수는 아니었고요. 나는 사업과는 궁합이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연구소에도 예다가 있긴 해요. 하지만 예다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와는 별도로 움직입니다. 기술 특허 이전에 대해 연구자들이 관여하는 경우는 없어요. 철저히 일이 분화돼 있는 셈이죠. 교수와 학생들은 기초과학 연구에만 전념하고 예다는 비즈니스적 감각을 발휘해 기술 이전에 두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바이츠만과학연구소와 예다는 운영되고 있습니다. 연구자에게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학문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에 따르면 기술 특허가 성공적으로 출원될 경우 바이츠만과학연구소에 오는 특허 수익의 60%는 연구실에 재투자되고 40%는 연구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하렐 교수가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한 넉넉한 지원이 있는 것이다.

하렐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 우리나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운영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정부 출연금 이외에 외부 위탁 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산업 분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 연구기관뿐 아니라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주력하는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 연구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한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기술 특허 개수는 많은데 대부분 장롱 특허이며 그렇다고 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를 벤치마킹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최근 설립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정부가 100% 경비를 지원해 연구자에게는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연구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예다를 벤치마킹해 2015년쯤 ‘IBS 이노베이션’이란 기술지주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연구 분야와 기술 특허 활용 분야를 명확히 나눠 운영한다는 의미다. 일단 이스라엘에선 성공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현 정부 출연 연구기관 운영의 문제점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왜 이스라엘에선 기초과학 연구를 활용한 벤처 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발전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역시 그는 연구자 입장에서 이를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로직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봅시다. 난 사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외부로부터 내 연구 성과물에 대해 관심을 받았고 급기야 회사까지 차리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기술지주회사의 기술 특허 활용 전문가들이 난다 긴다 하더라도 기초 재료인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없으면 그 기술을 팔아먹을 수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실현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를 해줬다. 몇 번 설명을 한 끝에 드디어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이스라엘의 벤처 창업 생태계는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가 기자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하렐 교수는 입을 열었다.

“작고 똑똑한 하이테크 기업들이 많아져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ICT 분야 공룡이 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도 처음에는 작고 똑똑한 기술로 시작했어요. 그런 점에서 국가적 목표로 삼는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과 영리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면 이러한 기업들이 생기는 겁니다.”

인터뷰 = 유회경 차장대우(경제산업부) 대구 =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