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관리 등 단순 용역에도 ‘학력 요구’

학력차별 철폐에 앞장서야 할 정부기관들이 오히려 다이어리 제작, 건물 관리 등 단순 용역계약에서조차 관계자 학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등의 입찰정보가 공고되는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홈페이지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주한 ‘2014년 다이어리 제작 사업 입찰’ 관련 공고가 게재됐다. 해당 공고에는 제안서 및 입찰 서식도 함께 첨부됐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입찰 참여업체 관계자의 이력사항을 기재하는 난이었다. 다이어리를 제작해 납품하는 단순 용역 계약이었지만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참여하는 인력의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여부 등 최종 학력뿐 아니라 전공 등 보다 세부적인 학력 사항도 요구했다.

지난 6월 교육부 산하 한국장학재단이 발주한 용역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라장터에 올라온 용역 계약은 한국장학재단과 한국사학진흥재단 소유 건물을 종합관리해 주는 업체를 찾는 내용이었다. 한국장학재단이 명시한 계약 추진 목적 역시 ‘청사 시설물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관리, 청사 내 도난 예방 및 방문자 안내, 건물 청결 유지’ 등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용역이었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은 입찰 참여업체가 제출하는 제안서에 ‘참여기술자의 이력사항’ 항목을 만들어 출신 학교와 전공, 재학 기간 등을 기재토록 요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종 용역 계약 체결 과정에서 학력 기재를 요구하는 행태가 일부 기관이 아니라 대다수 정부부처나 소속 기관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대학교육연구소가 나라장터에 올라온 용역 입찰서류를 무작위로 표본추출해 분석한 결과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다수의 정부부처 산하 기관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인쇄물 기획 제작 등 비교적 단순한 용역 계약 시에도 관련자 학력을 기재토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기관의 학력기재 요구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조달청에 문의한 결과 입찰서류에 학력 기재를 명시하도록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라며 “학력철폐라는 사회적 기대에 역행하는 제도를 하루빨리 손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