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신춘문예>어른의 동심 -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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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순수를 둘러싼 마음들

아이들이 부르는 인기 동요 중에는 빠른 멜로디나 사랑의 수사 안에, 억압된 욕망과 불안을 감추고 있는 곡들이 있다. 한마디로, 빠르지만 슬픈 동요들이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 줄 수 없겠니. 먹고 싶은 것이랑 놀고 싶은 것이랑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줄래”,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 같은 내용이 그러하다. ‘피노키오’와 ‘아빠 힘내세요’처럼 빠른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가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가사에는 ‘-하(지 말)라’의 세계를 벗어나고픈 아이의 소망과 퇴근한 아빠의 얼굴에서 미리부터 불안의 징조를 읽고 마는 ‘조숙한’ 어린이의 내면이 투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이면에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피노키오를 만들었던 제페토 할아버지와 함부로 ‘우울해 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가 자리한다. 이처럼 동심을 둘러싼 노래와 이야기에는 그것을 넘어선, 혹은 그것이 감추고 있는 마음들이 자리한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지(李贄)는 ＜동심설(童心說)＞에서 동심은 진실한 마음(夫童心者眞心也)이라고 말했다. (1)그는 견문과 도리로 문장을 지으려는 전통 유가의 문학론을 비판하며 동심을 언급했고, 만인이 이 동심을 회복하면 악의 세계에서 자기를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명·청대 금서에 이름을 올렸던 ＜서상기＞와 ＜수호전＞을 수작으로 꼽은 것 역시 그것이 동심과 같은 참된 마음에서 비롯된 작품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학적 전통을 부정하고 진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추구하는 데에서 동심설이 탄생했다면, 지금의 소설들은 진정에 바탕을 둔 소설을 쓰되, 동심에 대한 기존의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심설을 전유하는 형태를 띤다.

동심이 갖는 순수의 전조들은 문학을 넘어 방송과 영화를 통해 시청자들을 위안하는 소재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동심을 가질 수 있는 주체와 동심이 야기하는 행위의 예측불가능성은 순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넘어 다른 질문을 낳게 했다. 가령, 동심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 동심은 어떤 행위를 낳을 수 있는가. 저마다 자기의 근원에 자리한 동심의 궁극에는 악을 이길 수 있는 선이 자리하고 있는가. 결국 이즈음의 소설들은 어른이 상실한 동심을 추억하는 단계를 넘어 그것의 본질을 사유하고, 그것이 상실되거나 변질되는 원인을 폭로하며, 동심이 야기할 수 있는 행위와 다른 감성을 서사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2)

그 안에서 놀이와 꿈은 생의 짝패인 죽음과 맞닿아 있게 되며,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은 공포와 불안의 징후로 읽힌다. 그리고 아이의 순진한 행동은 무람없이 넘어설 것 같은 윤리의 문턱에 걸려 죄의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이때, 동심은 무언가를 발생케 하는 ‘작용의 원리’가 되는데, 그것은 사람, 사물, 장소에 내재하는 영적 본질이며 개별적 존재에 깃든 본성을 의미하는 ‘게니우스(genius)’와 연결될 수 있다. 미술사가 빌헬름 메써러(Wilhelm Messerer)는 회화와 조각 같은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아기천사 푸토(Putto)의 기원을 탄생과 죽음의 신 ‘게니우스’에서 찾은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로마시대에 날개 달린 벌거숭이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던 십대의 게니우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아기의 형상으로 복수화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변천 속에서 우리는 순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점차 인간 탄생의 순간, 즉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은 최초의 시간성을 형상화하는 데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어른이 생각하는 아이의 이미지, 아이는 독립된 주체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어른의 (무)의식(3)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가에 의해 관찰되고 만들어진 동심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의 것이면서 어른의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흔적처럼 남아 삶의 위안이 되는 동심이, 어떤 어른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이 될 수도 있다.



Ⅱ. 동화로 읽는 소설

1986년, 작가 임철우는 소설 ＜볼록거울＞에서 “수염 난 ‘아이들’과 또 그들을 벽 안으로 밀어 넣은 채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유리벽’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 시대 임철우는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유리벽이 가져온 ‘막연한 절망감’을 호소하면서도, 그것을 ‘한 집단의 엄청난 음모와 가증한 거짓 언어가 쌓아 올린’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4) 그러나 그때보다 더 많은 성인을 아이들로 포섭해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내부’에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가르는 유리벽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제 작가들은 주체의 외부에 존재했던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지우고 아이에게서 어른의 세계를, 어른에게서 아이의 세계를 포착한다. 그 뒤섞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감수성을 만나게 된다.

근래의 소설은 아이와 어른의 동심을 문제 삼는다. 소설가는 아름다운 동심이라는 기본 문법에서 벗어나 독자로 하여금 동심의 순수성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소설에서 소년과 소녀는 ‘짐승’, ‘악마’, ‘돼지’, ‘방화광’, ‘레인맨’, ‘별’과 ‘루크 스카이워커’로 호명된다. 소년소녀라는 단어가 환기했던 서정성은 동물성, 악, 광기, 자폐, 환상의 이미지에 묻혀버린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화들이 아동문학의 영역을 초월해 있었던 것처럼, 동심을 문제 삼은 소설들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잠재된 ‘관계’의 내러티브를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른에게 종속된 아이 같은 서열화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소설 속에서 아이는 엄마놀이를 하며, 엄마가 하는 욕설과 행동을 모방하다가 사람을 죽인다. 장난 같은 아이의 마술은 죽음에 대한 집단적 환상을 낳고, 시체놀이를 하던 아이는 정말 죽거나 누군가를 죽인다. 이때,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던 폭력의 방향성은 전도되며, 그 폭력이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공포를 낳는다.

천운영 소설 ＜감은 눈 뜬 눈＞과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은 연작 형태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원하지 않은 아이로 태어난 자매가 살인자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엄마가 동생을 죽이려는 순간을 목격하고, 엄마가 그 사건을 목격한 자신의 눈을 앗아가거나 동생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살아간다. 스스로를 ‘짐승’이라 말하는 ‘나’가 유일하게 안식을 얻는 때는 동생과 하나가 되어 ‘아이처럼’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는 너의 안식처이자 요양소였다. 아이 옆에만 가면 너는 이제 막 말을 배운 애처럼 수다스러워지곤 했다. 너는 네가 아는 모든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나쁜 어른들을 혼내주는 이빨 요정과 춤추는 빨간 구두 소녀, 수수두꺼비 등에 붙어사는 왕자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두 자매 이야기였다. 네가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길 잃은 자매는 때때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었고, 수수두꺼비 등에는 왕자 대신 엄지손톱만 한 공주가 살기도 했다. 주인공과 배경은 매번 바뀌었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언제나 행복했다. (……) 학교에서 너는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누구와도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고, 친절을 가장하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경계했다. 너는 굳이 다른 애들을 네 세계 속으로 끌어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러한 태도는 너를 더 외톨이로 만들었다. 네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짐승들의 표적이 너였을 따름이다. ＜감은 눈 뜬 눈＞(203∼204면)



아이들의 현실은 불행하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통해 항상 행복을 만들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동생과 마법의 수프를 만들며 엄마놀이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든다. 한 여자가 연기를 보고 집에 들어와 화재 위험을 경고하며 ‘비난’의 말을 ‘벌레처럼’ 퍼붓자, 자매는 그 여자의 눈을 뽑아버린다. 이 같은 내용은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이 계모와 아이 사이의 갈등 관계를 희석시켜, 그 사이에 잠재된 폭력을 망각하게 한 것과 달리, 천운영은 친모와 딸 사이의 갈등을 몸싸움과 욕설로 극대화하고, 헨젤과 그레텔이 구원했던 가난한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엄마를 맡기고 사라지는 무책임한 존재로 그려낸다. 이것은 부모-되기를 거부하는 어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른 안에 존재하는 아이의 이야기이며, 동화적 환상을 통해서나마 폭력적 현실을 살아내는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이에게 강요된 모성의 이야기다. 작가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모두 어린 짐승이라 지칭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방어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아이들의 슬픈 얼굴을 본다.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에서 아이들은 그들이 죽인 여자가 ‘입에서 벌레들이 나오는 마녀’였다고 말하며, 살인의 전말을 ‘일상적’으로 전한다. 경찰서에서 자매를 보며 저 악마 같은 아이들은 절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거부하던 엄마는 국제아동돕기후원선교단 단장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 모든 내막은 형사의 트라우마와 공존한다. 자매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형사 ‘나’는 아이 낳기를 원하는 아내와 달리 아이를 원하지 않아 결국 이혼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가면, 형사가 아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에게 느꼈던 공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스스로 아버지-되기를 거부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화장실 낙서’로 해소해왔다는 형사의 말은 직업과 나이, 행동의 낙차 때문에 웃음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억압당한 동심이 야기한 수많은 행위의 가능성이 낙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사건으로 변주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녀에 대한 환상 속에서 사람을 죽인 자매의 살인사건이 공포스럽다면, 공포의 대상은 마녀인가, 마녀에 대한 아이들의 환상인가, 아이들의 대담함인가. 정찬의 ＜정결한 집＞과 김종옥의 ＜거리의 마술사＞에서 소년소녀는 환상놀이와 마법, 죽음(/임)에 대한 대범함을 보여준다. 정찬은 아이의 시체놀이로 자기의 ‘근원’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소설 속에서 소년은 소녀가 가르쳐준 시체놀이를 하며, 자신이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느낄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소년은 ‘괴물’이면서 ‘성모’인 엄마를 죽여야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에 대한 소년의 의식 분열은 소년 안에 존재하는 가해성과 사랑을 암시하며, 그것은 엄마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소년과 소녀가 행하는 시체놀이의 환상은 소년이 겪고 있는 가정불화와 엄마의 폭력, 소녀가 당한 집단 성폭행과 관련되어 있다. 소년이 자신을 ‘엄마의 별’인 동시에 영화 ‘스타워즈’의 인물 ‘루크 스카이워커’로 상상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인물이라는 점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꿈의 성취와 암흑세계와의 대결이라는 소년의 상상력은 그러므로 여전히 억압을 기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소년의 상상력은 소녀의 죽음을 계기로 자유로워진다. 결국 소년은 소녀의 세계로 가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속의 자신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소녀가 떨어져 죽은 난간에서 시체놀이를 하며 자신을 들여다본다. 소년은 이제 엄마에게 버림받지 않고, 자기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운영이 아이의 대범함을 자기방어의 문제로 그리고, 정찬이 그것을 자기 획득의 문제로 다뤘다면, 김종옥은 저항의 문제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 대범함이 슬프면서 아름답기에 이채를 띤다. 김종옥의 소설에서 ‘레인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학생 남우는 그 별명처럼 자폐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이들의 무관심과 폭행 속에서 왕따 생활을 하던 남우는 자신을 가장 심하게 괴롭힌 태영에게 마술사로부터 배운 ‘마술’을 행한다. 사람을 찌르지만 상처 입지 않고, 찌른 도구마저 사라지는 마술. 그러나 아이들은 마술 속에서 태영의 죽음을 보고, 아이들은 남우를 몰아세워 결국 창가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남우의 오랜 친구 희수는 당시 사건을 회상하며, 교실 안에 있었던 아이들이 ‘최면’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칼이나 태영의 피, 태영의 죽음을 봤다고 증언하지만 태영은 다치지 않았고, 교실에서 칼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왕따를 당했던 남우가 가해자인 태영에게 ‘마술’을 행했지만, 왕따 행위에 공모했던 학생들은 ‘칼’, ‘피’, ‘죽음’과 같은 ‘폭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로부터 시달렸던 ‘남우’의 공포는 마술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낳았고, 마술은 일종의 ‘저항’으로서의 행위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술 혹은 마법이 가진 힘은 아이들의 무의식에 잠재한 폭력성과 어떤 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시화한다. 마술과 같은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체험은, 아이들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욕망과 억압의 기제들을 보게 한다. (5)결국 마술의 힘을 믿었던 남우의 동심은 아이들을 동요시켰고, 아이들은 어떤 선한 힘을 통해 자기 안의 ‘악’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악을 보는 눈이 없으면 선도 보이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마법과 환상의 세계에 대한 소년소녀의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면 그곳엔 항상 죽음이 따라온다. 그러나 어떤 법이나 윤리도 이들의 상상력을 단죄하긴 어렵다. 상상은 아이가 억압의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현실 세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며,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자매, 자기를 지우고 자기의 근원을 보는 시체놀이, 마술 안팎의 소년 등이 보여주는 자기 분할의 모티프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영속성을 보장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자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 원초적 나르시시즘은 어린아이의 정신을 지배한다. (6)결국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폭력을 너무 일찍부터 알아버린 아이들에게서 미성숙한 어른을 본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괴물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괴물이라면, 우리 모두가 괴물인 셈이다.



Ⅲ.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어른

이제 어른은 아이 앞에서 동요한다. 소설 속에서 그 동요는 어른이 어린 아이를 보고 느끼는 사랑스러움이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감이다. 공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서 어른의 삶을 흔들어놓는다.

① 내 분노 밑에 깔린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 대해 다 말하게 될까봐 나는 다시 말했다. 겨우 이거였니. (……) 만약 이것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싸움이었다면 저애가 이겼고 나는 패했다. 아이가 필요로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쇠공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내 마당이었을 뿐. 나는 아니었다. 내가 너를 필요로 한다, 라는 감정은 드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어떤 관계든 그걸 먼저 드러내는 사람이 패자가 되기 마련이다. ＜학습의 生＞(65면)

② 마흔 대를 때리고 나니 몸이 휘청거렸다. 소년의 솜바지가 피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몸이 뻣뻣해지면서 식은땀이 났다. 공포감과 함께 수치심까지 일었다. (……) 아이니까 용서해줘야 한다. 아이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어린 아들의 살냄새였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낯선 얼굴이 보였다. 아이의 얼굴도, 아들의 얼굴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낯설 뿐인 얼굴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결한 집＞(22∼23면)

③ 동욱의 얼굴에는 죄책감은커녕 죄책감의 시늉도, 흉내도 없었다. 중학교 교사가 된 뒤부터 늘 느껴왔지만, 나는 아이들의 그런 미성숙이, 순진이, 동심이 무서웠다. 교단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사춘기가 지나도록 미성숙하고 순진하고 동심에 가득 찬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욱＞(183면)

그러나 다음 순간, 미니의 말 한마디에 미성숙과 순진과 동심은 모두 나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얼마나 늦된 사람인가. ＜동욱＞(197면)

처음, 어른은 아이에게 감추고 있던 감정(네가 나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더 원한다)을 들켜버렸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에게 자기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버렸음을 눈치챘다. 결국, 어른은 자신이 아이보다 미성숙함을 깨달았다. 이 흔들림의 시작엔 동심이 놓여 있지만, 그 끝엔 고독한 어른의 자책이 꼬리를 문다. 인간은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아니, 얼마나 배워야 하는가.

조경란의 ＜학습의 生＞에서 ‘나’는 윤리교사로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지만 아이들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남편과 헤어져 혼자 외진 마을에 살면서, 아버지에게 돼지로 불리는 중학생 ‘무순’을 알게 되고, 그의 투포환 연습을 위해 마당을 빌려준다. 그리고 마흔 아홉의 퇴직교사와 중학교 3학년의 남학생은 ‘우정’을 쌓아간다. 아이가 힘이나 속도를 통해 투포환의 원리를 말할 때, ‘나’는 그것을 인간의 감정에 작동하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읽어낸다. 아이가 ‘꿈’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고독’에 대해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내 몸이 나를 적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폭행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되기 위해 쇠공을 던지는 ‘무순’에게서 그녀가 ‘생의 감각’과 ‘평온’, 그리고 ‘조용한 투쟁’을 느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나’는 지갑의 돈이 없어지자 자신이 아이에게 느끼는 분노 밑에 ‘두려움’이 깔려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아이가 다시는 내 집에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무순’이 내가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의 쇠공을 사가지고 내 집에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사이 자신의 시간이 멈춰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마당에서 쇠공을 던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공이 정지된 자신의 생명을 밀어내고, 현재의 자신을 일깨운다고 느낀다. ‘나’는 다시 돌아온 ’무순’을 통해 그가 공을 던질 수 있는 원처럼 ‘보호된 고독’ 속에서만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무서운 병과 싸우는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와 ‘무순’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서로를 통해 고독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고독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른과 아이가 각자 감내해야 할 고독과 고통을 인정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 관계가 부모와 자식, 교사와 제자 사이에도 가능할 수 있다면, 어른이 아이 앞에서 ‘공포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공포감과 수치심은 어른이 아이를 복종시킬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열패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패감은 내가 너를, 세상을 다 안다고 믿는 자부심이 훼손된 데에서 비롯한다. 정찬의 소설에서 엄마와 아들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엄마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무력함과 연약함을 아들의 삶을 지배하는 데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통해서만 세상을 봤던 엄마는 현실의 위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롤로 메이는 이와 같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순수를 거짓순수(pseudoinnocence)라 언급한다. (7)거짓순수는 상황을 단순하게 보이게 만들 뿐, 자신이나 타자의 내면이 파괴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자기 안에 있는 악의 요소를 포용할 수 없는 순수는 악이 된다.

김연수의 소설 ＜동욱＞에서 교사인 ‘나’는 “사춘기가 지나도록 미성숙하고 순진하고 동심에 가득 찬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연쇄방화범으로 경찰서에 잡혀간 제자 ‘동욱’이 쑥스럽게 웃을 때, 반 아이들이 ‘동욱’의 감형을 위한 탄원서 쓰기를 거부할 때, ‘동욱’의 여자친구 ‘미니’가 찾아와 선생님이라면 ‘동욱’이를 말렸겠느냐고 반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 큰 아이들의 동심에 공포를 느끼며 분노한다. 그러나 ‘미니’가 재개발 지역에 용역들이 지른 불이 수시로 솟았지만 경찰들이 조사를 벌인 적이 없었고, 그 불을 끄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며, 탄원서를 쓴들 “뭐가 달라지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나쁘고 무섭다고 생각했던 ‘동심’이 자기의 것이 됨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동욱’의 집에 갔다가 폐허가 된 재개발 지역을 보고 돌아와 ‘무기력’과 ‘슬픔’, ‘미안함’으로 점철된 눈물을 흘린다. 이제 그녀는 어린 ‘동욱’이 경험했을 공포와 분노를,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명 이 소설은 ‘뉴타운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도시 재개발 붐과 그것의 폭력성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왜 이토록 선한 여운을 남기는가.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를 안고 있다. ‘동욱’의 이야기와 내 남편의 이야기. 독자는 ‘동욱’이 경험한 방화와 재개발 같은 요소에 상응하는 심리상태 속으로 빠져들어 있다가 그 요소에 사슬처럼 연결된 다른 사건을 겹쳐 읽게 된다. 그것은 30여 년 전, 남편이 본 죽음과 불빛에 관한 기억이며, 용서받은 동심에 관한 이야기다. ‘동욱’의 사건을 전해들은 ‘나’의 남편은 중학교 1학년 때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으며, 그 일이 있은 후 4년이 지나 그 강에 찾아갔지만 강을 등진 채 친구들이 피우는 담배 불빛만 바라보다 돌아온 이야기를 해준다. 그가 강을 마주 볼 수 없었던 것은 그 강에 그를 구하고 죽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일방적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뿐,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음을 느낀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다시 ‘동욱’을 보기 위해 구치소에 가서 접견신청서를 쓰다가 관계란에 ‘친구’라고 쓴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감내해야 했던 아이를 방관했던 어른이, 아이를 생각하며 행하는 속죄예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시작될 우정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나’와 마주한 ‘동욱’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반성문을 쓴다고 말한다. 아니, “정말 반성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동욱’을 부모 없이 자란 불우한 방화광으로 규정하고 그에 걸맞은 기형적 생각과 행동을 강제하는 사회적 시선을 무력하게 만든다. ‘동욱’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속죄와 정화의 연소일지 모를’ ‘관계의 불’이 자기 안에 타오르고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이 스스로 ‘악에 연루되었음’을 인정하며 시작된 반성문이다. 소설의 선한 기운은 거기에서 비롯한다.



Ⅳ. 夫童心者眞心也

우리가 동심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순수(innocence)라는 말은 ‘죄책감이나 죄에서 자유로운’이란 뜻을 가진다. 그것은 달리 말해 ‘자기 속에 있는 악을 인식’하거나 또는 ‘악에 연루된’ 현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어린아이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8)조경란과 김연수의 소설에서 어른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을 인식하거나 악에 연루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며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동심은 그 자체로 순수한 선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안에 잠재하는 악과 선의 공존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김종옥의 소설에서 희수가 남우의 죽음을 계기로 “선(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해피엔딩의 동화를 지어내며 짐승의 시간을 견딘 자매와 마술의 힘으로 왕따의 세계에 온몸으로 저항한 레인맨, 꿈을 위해 자기 한계와 타인의 멸시를 쇠공의 무게로 감내하는 무순, 시체놀이와 좀비놀이를 통해 이전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소년, 생에 대한 위협 앞에서 느꼈던 분노를 스스로 반성하게 된 동욱을 만났다. 그리고 아직 미숙하여 악덕이 되는 일도 실수로 여겨지는 어린 영혼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내 안에 존재하는 유리벽 이쪽과 저쪽의 목소리들이 뒤섞이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순수라는 명분으로 욕망을 걸러 내는 사회에서 자기의 마음을 얼마만큼 들여다보며 살아왔는가.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자폐아 아들 ‘태호’와 죽기를 결심하고 나선 엄마는 그 길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한 번도 자폐아의 엄마 되기를 꿈꾼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자폐아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잃고 살아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 그녀는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이 중학 시절에 꾸었던 시인의 꿈을 다시 꾸고, 그 꿈을 이룬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말의 무력함’을 아는 시인의 시를 읽고,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자폐아 태호가 눈먼 강아지와 ‘소통’하고 있음을 발견하며, 마음을 읽는 것은 마음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이 동심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것은 ‘태호’와 엄마의 이야기를 전하는 쌍둥이 자매의 어린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엄마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서도 아니다. 그저 ‘마음의 움직임’이 거기 ‘있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렇게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마음으로 알아가는 시간 속에 놓여 있다.

“그런 곳에서는 모두들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망하는 곳에 이르리라. 심지어 우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만약 우리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잡히지 않는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깊은 밤, 기린의 말＞(55면)＜끝＞



(1) 李贄, 김혜경 역, ＜동심설(童心說)＞, ＜분서(焚書)＞, 한길사, 2004, 348면.

(2) 이 글이 인용하는 소설의 내용은 조경란의 ＜일요일의 철학＞, 정찬의 ＜정결한 집＞, 김종옥 외,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천운영의 ＜엄마도 아시다시피＞,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013) 등 단행본에 수록된 작품에 근거함을 밝혀둔다.

(3) 이와 같은 관점은 ‘아동문학이 결코 순진하지 않으며, 극단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조네이도의 견해를 참조한 것이다. 그는 아동문학이 어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동의 이미지를 정해놓고 그에 걸맞은 아동을 양산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한 이야기라 주장한다.

Joseph L. Zornado, 구은혜 역 ＜만들어진 아동＞, 마고북스 2011.

(4) 임철우, ＜볼록거울＞, ＜198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86, 80면.

(5) 제프리 버튼 러셀은, 마술이 영혼 전체를 통합하는 데 있어 무의식의 중요성을 파악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남우가 있던 교실에서 학생들이 체험하고 증언한 마술의 힘은 그들의 집단 심리가 잠재적인 폭력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Jeffrey B. Russell, 김은주 역,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 315면.

(6) 프로이트, 정장진 역, ＜예술, 문학, 정신분석＞, 열린책들, 2005, 425면.

(7) Rollo May, 신장근 역, ＜권력과 거짓순수＞, 문예출판사, 2013, 55면.

(8) 위의 책, 53∼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