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종이모형 페스티벌에서 종이모형 제작자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180㎝의 키를 자랑하는 아이언맨, 장난감보다 더 정교한 탱크, 이 모든 걸 종이로 만들었답니다.”
지난해 12월 7∼8일 양일간 서울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종이모형 페스티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밀리터리, 캐릭터, 로봇, 자동차, 건물 등의 다양한 장르별로 각양각색의 종이모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눈으로 보고서도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범선, 군함, 탱크, 로봇 건담,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만화캐릭터 등 각각의 작품들은 제작자들의 개성과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와 색상, 모양으로 전시돼 있어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정교하고 튼튼해 보이는, 붉은색과 황금색의 조합이 멋진, 제작기간만 3개월이 걸렸다는 슈퍼 히어로 아이언맨. 아이언맨 앞에서는 페스티벌 참석을 기념해 연신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종이접기모델링이 가능한 3D프로그램을 통해 설계도면을 그리고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해 이를 조립해 완성하거나, 색지 등 종이를 접어 겹쳐서 모형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번 종이모형 페스티벌은 지난해 3월부터 9개월간 ‘페이퍼모델’ ‘저스트 페이퍼’ 등 인터넷카페 및 사이트 6개 대표 및 회원들 50여 명이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종이모형 제작 등을 홍보하고자 야심차게 준비한 결실이다. 관람객들은 8세 어린이부터 50대 어른까지 다양하다. 인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가한 조형근(10) 군은 종이모형 인터넷카페 회원이다. 조 군은 정교하게 조립된 탱크 모형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와” 하는 감탄을 연발했다. 조 군은 “작품이 정말 멋지다”면서 “인터넷카페에서 보고 종이모형만들기를 실제로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덕분에 게임을 안 하게 됐고 집중력도 향상됐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회사원 최형석(39) 씨는 9세, 7세 아들을 둔 가장이다. 최 씨는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기 위해 고민하던 중 인터넷을 보고 종이모형을 만들게 됐다”면서 “내가 직접 만든 로봇, 동물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페스티벌을 주관한 인터넷카페 운영진들도 대부분 40대 가장들이다. ‘페이퍼모델’ 운영자 김태경(43) 씨는 1남 1녀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들이 4세 때 종이모형을 만들어주다가 흥미를 느낀 김 씨는 직접 설계도면을 그려 호빵맨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인터넷카페에 자신이 만든 설계도면을 공개했다. 김 씨는 “설계도면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만든 것을 인쇄해 조립하는 것도 쉽지 않아 4∼5번 같은 과정을 되풀이할 때도 있다”면서도 “모형도면을 공개하면 다른 회원들 수만 명이 꼬리글을 달거나 내 작품을 따라 만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충북 청주에 있는 보육원에 월 1회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아이들에게 종이모형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캐릭터 모형 등을 함께 만드는 재능기부 봉사를 하고 있다.
종이접기를 하다 보니 술과 담배, 게임을 끊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카페 ‘저스트 페이퍼’ 운영자 이현성(34) 씨는 “카페 회원들과 퇴근 이후에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을 끊게 됐으며 술도 줄이게 됐다”면서 “한번은 담배를 피우다가 종이모형에 니코틴이 흡착돼 누렇게 되는 것을 보고 담배까지 끊게 됐다”고 말했다.
종이에 도면을 그려 잘라 붙이는 방식 대신 순전히 A4용지나 색지를 접어서 종이접기로만 작품을 만든 경우도 눈에 띄었다.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대학생 이현민(21) 씨는 중학교 때부터 종이모형을 만들어왔고 현재는 복지관 등에서 종이접기 관련 재능기부를 할 정도로 솜씨가 수준높다. 이 씨는 “머릿속에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큰 틀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살을 붙인다는 느낌으로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만든 작품은 직접 만든 당사자도 다시 제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을 가지기에 더 소장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이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습기에 민감하고 보관에 유의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현성 씨는 “비가 오면 작품이 눅눅해지고 습기에 약한 문제가 있어 주로 작품 제작을 겨울에 한다”면서 “장마철에 창문을 열어뒀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비로 모형이 망가지고 날아가버려 작품을 망친 아픈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종이모형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다 보니 전문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전문가로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종이모형 디자이너 김철호(28) 씨는 중학교 때부터 종이모형에 관심을 갖고 로켓, 쥐, 호랑나비 등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이 분야에서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김 씨는 종이모형 제작과 관련된 서적을 집필했고 그 중엔 현재 초등학교 등에서 교재로 쓰이는 것도 있다.
종이모형제작전문업체 ‘하우페이퍼’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양진국(45) 씨는 “폴란드가 종이모형의 종주국으로 매우 정밀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에도 페스티벌 등을 활성화해 지역축제화하는 한편, 종이모형에서 종이산업의 새로운 도약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서정 기자 hims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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