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초대석>“현대·기아車 올 또다시 대규모 파업땐 한국경제에 치명타”

  • 문화일보
  • 입력 2014-01-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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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글로벌 관점에서 임금 및 노사 문제 등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유지수 국민대 총장을 만난 것은 지난 연말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 판결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할 때였다. 평소 한국 산업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왔던 유 총장과의 인터뷰는 우리나라 산업이 직면한 어려운 현실을 새삼 직시하게 해주었다. 유 총장은 “고임금, 친노동 정책, 강성 노조 등을 견디지 못하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있는 호주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한국 경제가 글로벌 톱10 규모로 성장한 만큼, 노사와 임금 등 산업 부문 문제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현대·기아자동차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파업 등 노사 대전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2012∼2013년에 이어 2014년에 또다시 대규모 파업 사태가 일어난다면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철도·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민노총의 총파업에 동참하고, 노조 대의원 선거에서 강경파들이 대거 당선된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유 총장은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되살아나려면 기업들의 투자가 들불처럼 일어나야 한다”면서 “그러나 규제가 발목을 잡고 기업 투자의 숨통을 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총장은 생산관리 분야를 전공한 정통 경영학자다. 하지만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생산관리와 노사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춰 연구한데다 다양한 언로를 통해 올바른 노사관계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자주 피력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노동 문제 전문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성북구 정릉로 국민대 총장실에서 만난 유 총장은 점잔을 빼거나 핵심을 빙빙 돌려가며 은연중 박학을 자랑하는 그런 교수는 아니었다. 눈치보지 않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할 말을 하는 돌직구 스타일이었다. 대면 인터뷰 이후 시간이 흐른 탓에 전화로 인터뷰 내용을 보충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한국 산업계의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범위를 놓고 그 동안 제기됐던 논란과 불확실성이 제거된 것은 긍정적인 면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빼놓고는 모두 걱정스러운 것들입니다. 고임금 구조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고, 새로운 임금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 갈등도 격화될 것입니다. 자동차 업계와 중소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됩니다.”

―향후 자동차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호주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호주는 연간 100만 대 소비시장으로 자동차 생산량의 70%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주 달러 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임금은 10년 전에 비해 90% 이상 올랐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노조의 파업 금지법안이 폐기될 정도로 사회 분위기도 친노동계로 전환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포드자동차가 2016년 호주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글로벌 GM도 2017년 말 호주의 자회사인 홀덴의 생산공장을 폐쇄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토요타자동차도 호주에서 공장을 철수시킬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어요. 원화 가치 상승, 높은 임금 상승, 친노동적 사회분위기 등 한국은 호주와 아주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로자 해고가 다른 나라보다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한국도 호주 꼴이 날 수 있습니다.”

―당장 외국계 자동차 업체의 국내 철수론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GM이나 르노그룹은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를 전 세계에 있는 생산공장 중 한 곳으로 봅니다.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생산 물량을 늘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냉정하게 떠납니다. 그게 글로벌 기업들의 생존 전략입니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를 살려주기 위해 본사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유 총장은 최근 한 외국계 자동차 업체의 최고위 간부와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람은 한국 공장 생산물량을 따내기 위해 본사에 가서 중국 상하이(上海) 공장, 스페인 공장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한다고 합니다. 차량 몇 대 생산 물량을 주면 어느 정도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본사를 설득하며 다른 해외 공장들과 싸운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국정조사로 딴지걸고, 노조는 파업 등으로 리스크만 부각시킨다는 겁니다. 다른 외국 공장들이 한국 공장의 이런 부정적인 면을 적극 이용해 한국 공장 생산물량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유 총장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사고 방식은 국내 내부에만 국한된 측면이 적지 않다”며 “제품 판매뿐 아니라 임금과 복지, 생산성 등 모든 면에서 이제는 외국 공장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임금 인상 요구를 무조건 막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수익성이 좋은 프리미엄 차량을 국내 공장에서 더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현대·기아차는 소형, 중형,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해외 공장으로 돌리고 국내 공장에서는 싼타페나 제네시스, K9, 에쿠스 등 대형 고급 차량을 더 많이 생산해야만 국내 고임금 구조를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측이 인력 재배치 및 조정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노동 유연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현실은 강성 노조에 밀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성 노조가 한국 산업 경쟁력의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현대차가 망한다면 노조 때문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노조가 강성인 것은 사실입니다. 올해가 특히 걱정스럽습니다. 경찰이 민노총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것을 놓고 노동계가 총파업을 결의하지 않았습니까. 현대·기아차 노조 등도 동참을 선언했습니다. 올해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온건파라고 하지만, 현장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조 대의원들은 모두가 강경파이기 때문에 노사 대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 7만3462대(1조4360억 원), 2012년에는 14만4979대(2조7396억 원)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노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현재로선 회사가 내일 부도가 난다고 해도 노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힘이 노조 쪽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의 경우 최근 잇단 해외 공장 건설로 생산량의 50% 이상이 해외에서 생산되면서 사측에도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은 희망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이 교차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원고 엔저’ 등 환율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 전체로서는 큰 걱정거리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부문만 보면 저 개인적으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현지 생산 비율이 높아진데다 품질, 성능, 기술면에서 일본차에 크게 뒤지지 않아 힘들기는 하겠지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강성 노조와 규제, 민원이라고 봅니다.”

―정부에서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대폭적인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습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정말 잘했습니다. 규제 가운데 처음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규제를 위한 규제로 남아 있는 게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규제를 푼다고 해도 실제 권한을 갖고 있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규제를 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대통령보다 창구 직원의 힘이 더 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 총장은 “규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원’”이라며 “우리나라는 ‘민의’ 국가가 아니라 ‘민원’ 국가”라고 한탄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내주어도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면 공장 부지에 대못 하나 박을 수 없습니다. 매일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공무원들도 ‘주민 민원을 먼저 해결하고 오라’고 하는데, 기업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나보다 남을, 지역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회복이 정말 중요합니다.”

―현대·기아차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확충론’과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총장님은 어느 쪽이신가요.

“저는 신중론 쪽입니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성장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영학자이자, 교육자 측면에서 보면 생산량 증대에 필요한 우수한 연구·개발(R&D) 및 관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량만 늘릴 경우 품질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민대가 수도권 종합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자동차 단과대학을 설립한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까.

“자동차 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중요한 부문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또한 자동차 산업 변화에 맞춰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교육도 변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과 보디, 섀시 등 자동차 전문 기술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전자, 정보기술(IT)과 융합할 수 있는 문사철에 능한 통합형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자동차 기계학을 전공한 사람은 IT에 대해 잘 모르고, IT분야를 공부한 사람은 기계공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같은 벽을 허물고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래야 일본과 독일 업체를 따라 잡을 수 있고, 중국 업체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협력업체가 많은 자동차 업계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00년대 초 전국을 돌아다니며 중소 자동차 업체들을 연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그마한 업체가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의 성장 과실이 중소기업에 나눠진 것입니다.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완성차 업체의 성장이 부품 협력업체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글로벌 시각에서 동반성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유병권 차장(경제산업부) yb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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